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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5-29 21:29
법신스님 이야기
 글쓴이 : 일장
조회 : 803  

지난번 KBS에서 방송이 나간 뒤로 법신스님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것 같아 그의 근황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야기를 좀 하고자 한다.

법신스님은 나와 배병화와 그야말로 단짝인 친구였다(키도 성격도 고만고만했고 오죽하면 3총사라 켔겠나). 초등학교 3, 4학년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줄곧 친하게 지냈지.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천날만날 등ㆍ하교를 함께 했으니 그 세월이 얼마였겠노.
더구나 나는 법신스님이 출가를 선언한 순간(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때 분황사에서)에 현장에 있었던 한 사람이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네.
어찌됐건 그날부터 우리의 강호숙 친구는 ‘법신’이라는 법명을 가진 ‘스님’이 되었고, 나는 어린 마음에 스님과 속세인이라는 신분차이 때문인지 거리감을 느꼈고 친구 한 명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긴 해도 친분관계가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고 약간은 어정쩡한 관계로 교분은 지속되었다.
내가 결혼할 때에도 은사스님인 도문스님을 모셔와 주례를 하시도록 주선해 주었고, 그 뒤에도 가끔 서울의 대각사나 경주 천룡사 등에서 만난 적이 있다.
1993년 내가 뇌종양 판정을 받아 사경(?)을 헤메고 있을 때 부산 백병원에 저녁마다 찾아와 집사람에게 조그만 불상과 염주를 주면서 기도하도록 하고 힘이 되는 덕담도 많이 해주었다. 집사람은 그때 법신스님이 해 준 것이 고마워서 법신스님이라카면 꺼뻑 죽는다. 덕택에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지금은 주로 네팔 룸비니 대성석가사에 있다가 가끔 한국에 들어온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는 한국에 있다. 한국에 와도 다른 사람은 거의 안 만나는 것 같고 배병화와 나만 찾는다. 그것도 꼭 연락하라고 신신당부를 해놔야 그렇게 한다.
네팔 룸비니에서 대성석가사를 세우는 역사를 혼자서 기획해서 이만큼 이루었으니 그것만 해도 존경할만한 일이다. 본인도 가끔 ‘사람은 저마다 잘 하는 것이 있는데 나는 토목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한다.
지난번 KBS방송은 5년전부터 틈틈이 찍은 것으로 이번에 극구 말렸는데도 방송국 자체의 편성계획 때문에 안된다면서 방송이 되었다고 한다. 방송 잘 보았다고 이야기를 하였더니 다큐멘타리도 드라마일 뿐이라며 겸손해 하였다.

각설하고, 아래 묘청이 법신스님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친구는 올리바라케서, 법신스님한테 전화를 하여 슬쩍 물어보니(한국에 왔을 때 쓰는 핸드폰이 있다) 아니나다를까 난감해 한다. 고등학교때 출가해서 40년 세월이 흐르다보니 동기들 만나기가 너무도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단다. 하도 강력히((완곡하지만) 난감해하니 그의 전화번호를 함부로 알려줄 수도 없네.

굳이 법신스님에게 뭔가를 보내려면 와이리가 지적한 대로 대성석가사로 보내면 될 것 같다. 물어보고 뭔가를 줄려고 하면 받을 사람이 아니다. 뭐든지 잘 안 받을려고 해서 주기도 힘든다. 강제로(?) 보내 버리는게 제일 좋은 방법이지.
아무튼 우리 친구 법신스님이 더욱 건강하여 좋은 일을 많이 하기를 빈다. 좀더 나이들면(?) 그때 친구들과 허물없이 만날 때가 있지 않을까(그런 뉘앙스를 풍기는 말을 하였다)기대하면서...

5월 29일 최병무

은강 13-05-30 12:35
답변  
그 깊은 인연을
상세하게 올려놓았네..

그동안^세월이 흘렀음에~
동기^나 친구^이기에는 높은산^을 쳐다보듯ㅡ
너무 거리가 있어보이는 "법륜""법신"스님^이 분명하다..

ㅡ 자랑스럽다!! 나무 관세음~보살 ㅡ
와이리 13-05-31 17:05
답변  
암튼
자랑스러운 3021 동기이며
국가적인 세계적인 스님다운 스님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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