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2-22 22:11
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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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일호
![](../skin/board/basic/img/icon_view.gif) 조회 : 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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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 오 탁 번
삼동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 땅 끝 외진 동네에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 잡았다
- 주민 여러분 !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간밤에 또 자가웃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 내렸다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 워메, 지랄나부렸소잉!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왼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들은
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그날 밤 집집마다 모과빛 장지문에는
뒷물하는 아낙네의 실루엣이 비쳤다
다음날 새벽잠에서 깬 이장이
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
우편함과 문패만 빠꼼하게 보일 뿐
온 천지가 흰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하느님이 행성만한 떡시루를 뒤엎은 듯
축사 지붕도 폭삭 무너져 내렸다
좆심 뚝심 다 좋은 이장은
윗목에 놓인 뒷물대야를 내동댕이치며
우주의 미아가 된 듯 울부짖었다
- 주민 여러분! 워따, 귀신 곡하겠당께!
인자 우리 동네, 몽땅 좆돼버렸쇼잉!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시를 경건하게만 생각한 친구가 있다면,
이 시를 읽으면, 허벌나게 웃음이 한 되박은 될 것이잉!
참고로 오탁번 시인은 2019년 목월문학상을 수상한 원로 시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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