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奇人이자, 벼슬의 차이는 있겠지만, 海印導師와 비슷한 경력자로 官界에도 진출한 경험이 있는 풍수지리가였던 조선조 대학자이시며 "土亭秘訣" 저자로 알려진 이지함 선생님의 산소를 남헌 이준기 사부님을 모시고 간산 공부 차 찾았다. 당소를 방문한 海印導師의 첫 느낌을 한 마디로 말한다. 즉, ★그냥 웃고 말았다★ 왜냐하면, 가족 집단매장지였지만, 명풍수가 좌점한 天下明堂이라 판단한 후손이 따닥따닥 아래로 산소를 이리저리 미어 터지게 들여서, 마치 시골 공동묘지 같은 느낌뿐이었다. 천하의 미련한 중생 같으니라고~~~ㅎ~~~
다만, 이지함 선생님은 海印導師가 평소 특별하게 생각한 사상가로 존경하는 위인이었다. 즉, 자신의 무덤 터를 미리 선정한 풍수지리 관련 철학자요! 思想家였기 때문이다. 다만, 그도 느낀 것이 있었던지(?) 비문은 간략하게 써라고 아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이지함 선생님 직계나 방계 후손 가문의 경우도 그렇다. 자신이 관계로 진출해서 나름 경제적인 기반을 닦고 그 후광으로 그의 사후 후손들도 유명세를 탓을 것이고, 아마도 풍수지리 좌점 등으로 전국에 걸쳐서 富를 축적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래서 그러한 집안의 경제를 바탕으로 후손을 교육시켰기 때문에 후손이 줄줄이 벼슬자가 나올 수 있었다고 냉정하게 판단할 따름이다. ~~~흠~~~ 끝.
참고로, 백과사전상의 이지함 선생 관련 글을 한 글자만(文人石을 문석인으로 오류 기재함) 고쳐서 그대로 옮긴다.
즉, 충청남도 보령시 주교면(舟橋面)고정리에 있는 이지함 묘는 생전에 미리 터를 정해두었다고도 전해지며, 이지함의 3형제가 모친의 상을 당하여 선영의 묘를 이장할 자리를 찾다가 이곳이 명당임을 알았다고도 한다. 이지함의 형제와 가족이 함께 있는 가족묘로 조성이 되어 있으며, 이지함의 묘는 봉분 둘레 10m, 높이 1.6m로 묘소에는 비석과 문석인이 있다. 화강암으로 만들진 비석은 직사각형의 대좌와 비신이 있다. 비신은 높이 132㎝, 너비 52㎝, 두께 17.8㎝이며, 전면에는 ‘土亭先生李公之墓 恭人完山李氏俯左’라 음각되어 있다. 낮은 산허리에 있으며, 보령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위치이다. 유언대로 비문은 간략하고 文人石은 치장이 거의 없이 매우 검소하다.
海印導師. 合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