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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7-12 20:44
몽골 여행
 글쓴이 : 김일호
조회 : 523  


몽골 여행


2018년 5월 11일 09시10분, 울란바토르로 떠나는 에어부산B411 비행기가 이륙했다.

일행은 우리 부부, 김정남씨 ,권혁주 시인, 나온 동희 시인 그리고 거제서 온 천씨 부자 모두 7명이다.
세 시간 반의 비행기 안은 지루한 시간이다. 창밖의 풍경도 없고. 구름 한 점 없는
강열한 햇살로 창문은 모두 닫혀 있고 승객 대부분은 자는 것 같다.
우란바르토 공황은 소박했다. 수도 공항치고는 아무른 장식이 없는 그래도 까다롭지 않은 인심이 마음에 들었다.
가이드 졸라를 만나 간 한인식당. 또한 전혀 내가 외국에 왔나는 생각이 들도록
너무도 친숙한 식단, 간까지 한국에 있는 식당에 온 것 같다.

오후 투어는 민속박물관, 의회가 있는 광장으로 갔다. 마침 5월은 몽골의 졸업시즌이라 선남선녀들의 기념 촬영으로 난리다. 특이한 것은 가슴에 훈장 같은 걸 단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가이더 왈, 좋은 성적으로 졸업한 엘리트들이란다. 남녀 모두 최고의 차림으로 서로 마음에 맞는 짝을 찾는 것 같기도 하다. 참 좋은 때라는 생각을 한다.
몽고는 12세기 때만 해도 고려까지 점령할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나라였으나 지금은 그나마 내몽고마저 빼앗기고 인구 겨우 300백여 만의 국민으로 열악한 국력으로 살고 있다 한다. 수도인 울란바로토에 전 인구의 삼분지 일인 백만이 거주하지만 우리의 작은 광역도시 정도로 이제 인프라가 되어 여기저기 공사로 수도의 모양을 갖추어 가는 것 같다. 영토는 한반도의 열 세배나 되는 땅이지만 대부분 불모지나 다름없는 초원 등이다.
시내 관광 중 몽골의 허준이라는 박태준 독립투사을 만난 것은 다행이고 기쁨이다. 조선말과 일제 강점기 초에 살았던 박지사는 연세의료원 출신 의사로 몽고에 와서 독립운동과 의료 봉사를 한 지도자이신 분이다. 몽고는 한국과 여러 가지로 친밀한 생각이 든다.
오후 일정은 세계 2차 대전 때 몽골, 러시아 연합군의 일본전 승전탑인 자이승 승전탑 투어를 마지막으로 첫 밤을 지낼 아이비스 호텔에 왔다 최근에 지은 오성급 호텔은 마음에 꼭 들었다. 편안한 몽골의 첫 밤을 지냈다

몽골 여행 둘째 날 일행은 근 다섯 시간을 버스 투어를 하며 서쪽으로 280키로를 달려 엘승타사르하이로 갔다. 끝없는 초원 몇 시간을 달려 왔지만 단순한 구릉과 초원 가끔 보이는 양. 소 말떼들 어쩌면 그것을 보러 왔는가 보다. 일행은 양, 소, 말떼를 보며 탄성을 지른다.
두 시간 정도 가다 몽고에서는 정말 보기 힘든 다리를 지나 점심을 먹으로 강가로 접근하다가 차가 모래 수렁에 빠져 꼼짝을 못한다. 주변의 찝차의 도움으로 가볍게 나왔지만 찝차의 주인이 나에게 보드카를 권한다. 잠시 친구가 되어 그의 아내, 딸 쌍둥이와 한 컷, 즐거운 만남이다. 여행의 즐거움은 의외성에 있는 것 같다.
도시락으로 한 점심 후 또 다시 서쪽으로, 서쪽으로 두어 시간이 지나서야 보이는 게르 뒷편의 사막, 우리는 낙타를 한 시간 정도 탔다. 털갈이를 하는 낙타와 삼 개월 된 새끼 낙타를 배경으로 샷터는 연거푸 찰칵거렸다. 오늘 일정은 오직 낙타를 타기 위한 것처럼.
이제 일행은 야외 숙박지 게르로 향했다, 한국의 펜션처럼 수 십 개의 게르로 지어진 숙박촌에 도착. 양고기와 그 외 한국과 똑같은 밑반찬으로 식사를 하고 게르에 들어갔다..
2인 1실의 게르 안은 두개의 침대로 넓고 아늑했다. 열시 쯤 난로에 불을 피워 쥤다. 산에도 나무가 보이지 않는 여기에 판자 몇 조각과 계란 판을 불쏘시개로 피운 방안은 금방 따뜻해졌고. 새벽에 다시 종업원이 살며시 들어와 다시 한 번 더 불을 피워주었다. 혹시 몰라 내복까지 끼어 입고 따뜻하게 잤다. 자기 전 일행은 별을 보기 위해 나왔다. 몽골의 별은 초원 위에 까지 내려왔고. 호박꽃처럼 컸다.

다음 날 5월13일 세 번째 날 일행은 모두 산베누(안녕!)하며 잘 잤다는 밝은 표정이다. 게르를 떠나려하자 주인 및 종업원 7명이 배웅해 주었다. 전통의상을 한 아가씨가 다음 여행의 안전을 비는 고수레 행사로 차를 빙 돌아가며 재물(아로울)을 뿌려주었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우라바토르까지 다섯 시간을 간다. 끝없는 초원 가운데 뚫려진 2차선 도로는 파인 곳이 많은지 비포장도로 같이 덜컹거리며 달린다. 도로까지 나오는 소. 양. 말떼들이 우리가 여기 온 이유를 말해준다. 다시 도착한 울란바로토는 일요일임에도 교통지옥이다. 도로, 주차장이 갖추어지지 않은데도 차만 수입되어 교통이 엉망이다. 그 사이를 통과하는 우리 기사의 운전솜씨가 대단하다. 몽고 차의 90 퍼샌트가 일산 도요다이다. 도요다 중고차가 싸기 때문이란다.
일행은 오후 한시가 넘어 겨우 점심을 먹었다. 입에 꼭 맛는 육개장을 먹고 다시 출발 .근 한 시간 정도 가자 높이 40미터에 달하는 징키스칸의 동상에서 사진을 찍고. 사냥 독수리를 팔에 얹고 또 찰칵. 몽고인들의 우상인 징키스탄이 그들의 자존심이고 대륙을 지배했던 역사의 향수를 느꼈다.

다시 일행은 테를지로 떠났다. 근 두 시간 쯤 달리자 달라지는 풍경. 평야 대신 산이 보이고 산과 산 사이 계곡으로. 우리는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낙엽송과 가끔은 자작나무 흰 수피를 보며 다다른 곳, 저 위에 아르야발 라마교 사원으로 가는 길은 출렁다리도 있었다. 다리를 흔드니 기겁을 하는 일행들, 마치 소녀처럼 모두 젊어졌다. 층고가 높은 계단을 오르며 내 체력이 전과 같지 않음을 느꼈다. 마니차를 굴리고, 부처님께 절을 하며 아이들과 동생들이 잘 되기를, 어머님 또한 편안한 여생이 되시길 빌었다.
사원을 나와 다시 한 30분을 더 달려 테레즈 국립공원 산속으로 들어가니 유네스코 지정 자연공원답게 울창한 수목과 바위, 초원 위에 풀을 뜯는 말. 소. 양 떼, 그 곁에 정물처럼 앉은 게르, 한 폭의 산수화 속에 우리가 탈 승마용 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겁을 내던 동희 시인도 한 시간의 말타기에 재미를 본 것 같다. 겨우 열 살 쯤 되 보이는 말을 앞에서 인도하는 소년 둘 중 한 애가 뽀오얀 얼굴이 성민이 같다. 한 시간 쯤 타니 엉덩이와 다리가 얼얼하다.
벌써 저녁 7시 식당에 차려진 몽골 전통 음식인 양고기 구이와 갖고 온 몽골 보드카. 와인으로 일행은 건배를 하며 오늘 하루 행복한 여행을 축하했다
몽골 여행 사흘째 밤이 깊었다. 내일은 다시 울란바로트로 돌아간다.
이튼 날 새벽, 일행은 행복한 꿈이라도 꾼 듯 얼굴이 말갛다. 자작나무 숲을 걸었다. 유일하게 나무에 작위를 붙인 자작나무 하얀 수피가 눈부시다.

우란바르트의 교통정체는 오늘도 지치게 한다. 도로 풍경 중 특이한 것은 굴절 버쓰다. 버쓰 2량이 붙어 가는데 코너에서 굴절되는 연결주름이 처음 보는 풍경이다. 우리 기사는 용케도 사고 없이 잘도 빠져 다닌다. 몽골 라마 불교의 총 본산인 간등 사원에 갔다. 25m나 되는 금 불상이 있는 라마교 총 본산답게 여러 채의 법당에 라마승이 독경에 한창이다. 열 살도 안돼 보이는 어린 라마승도 있다.
오후 캐스미르 판매장에서 팬션 쇼도 보고, 백화점에서 쇼핑을 했다. 한국 제품이 흔하게 보였고 몽고는 중국이나 러시아보다 한국을 더 친하게 여긴다고 했다. 핏줄이 통한다고 할까. 정이 들었다. 쇼핑 후 몽고 민속 공연을 보러 갔다. 한 200명 정도 수용하는 극장에는 각국 관람객으로 만원이다. 특이한 가락으로 관객의 흥을 돋구어 박수소리가 요란하다.
특별한 공연은 두 가지 목소리를 동시에 내는, 성대와 가성대를 동시에 놓고 고음과 저음을 같이 내는 발성법으로 허미라는 공연의 가수의 노래는 소름끼칠 정도였다. 세계에서 허미 공연을 할 수 있는 민족은 몽고인과 한국인뿐이라고 한다. 성대가 두 민족이 같다는 말이다.
한 시간이 좀 넘는 공연의 여운이 가기 전 가이더의 나쁜 소식이 전해졌다. 일기불순으로 예정된 시간에 출국이 어렵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밤을 보냈다. 예정대로라면 자고나면, 다음날 열시 경 공항 도착인데, 12시간 지체된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 밤새 마땅한 대안이 없던 우리에게 가이더의 제안에 일행은 귀가 솔깃해졌다.

우란바토르에서 100km 떨어진 아글락 사원으로 25인승 승합차는 또 덜컹거리며 갔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초록이 그저께보다 더 짙다. 광활한 초원을 한 번 더 본 것만으로도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사원이 가까워질수록 구미를 당기는 풍경, 짙어지는 자작나무 숲과 소나무는 한국의 미인송을 능가할 정도로 하나같이 아름답다. 더구나 나무의 윗부분은 황토색 수피가 감탄을 자아내곤 한다. 와! 대박!.
아글락 사원, 라마교 스님인 푸레바트 라마와 한국인 부인 김선정이 운영한다는 사원은 외관도 다른 사원보다 아름답지만 법당과 주변에 조각된 상상을 초월하는 불교조각품에 우리 일행은 조각물 속을 드나들며 아이들 마냥 웃고 떠들며 와! 대박이야! 대박!, 새옹지마란 이걸 두고 하는 말인가? 비행기 지연으로 우린 4만원이란 적은 비용으로 정말 즐거운 여행을 마쳤다. 오늘 하루 일정을 전체 여행의 절반의 가치가 있다는 만족감으로 흐뭇했다.
이제는 정말 떠나야 할 시간, 울란바토르로 돌아오는 두 시간, 몇 번을 봐도 시원한 초원을 등지며 돌아 온 울란바토르, 일행 중 일부는 쇼핑을 하고, 거리 구경도 하고, 다시 점심 때 들렀던 교포가 운영하는 한강이라는 식당에서 사장과 몽고의 일상으로 이야기를 했다. 젊은 사장의 애환을 들으며 황서방과 경화의 삶도 저러 했구나 라는 생각에 짠했다.

이번 여행에는 특별한 일행이 있었다. 천씨 부자다. 거제도에서 온 두 부자는 아들은 중 3, 아버진 46세인데 거의 친구처럼 대화와 팔씨름 등 재미있게 여행을 해 우리의 시선을 끌었다. 버쓰 이동 중 잠든 아들을 무릎에 누인 아버지, 난 저런 적이 있었던가? 개학 중인데도 아들을 데리고 여행을 온 천씨의 깨인 마음이 여행 내내 부러웠다.
2018년 5월 15일 23시 30분 울란바토르 징기스칸 공항에서 한국어가 유창하고. 친절했던 가이더 졸라와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나겠죠”. 아쉬운 이별을 하며 16일 01시 30분, 5박 6일의 몽고 여행은 끝나고 부산으로 이륙했다.

즐거운 여행이고 잘한 선택이었다. -끝-
*
_ 에필로그

(지금도 그 때 함께 여행했던 시인은 터키와 몽골은 한 번 더 가고 싶다고 한다.
참고로 이런 금전적 얘기는 평소에 금기로 하지만 이번 몽고 여행은 모든 옵션을 포함 85만원으로 갔다 왔다. 사실 이 금액은 성수기 편도 비행기 요금 밖에 안되는 금액이다. 터키 7박 8일에 110만원에 갔다 왔다면 허술한 여행일거란 생각이 들겠지만 어느 여행이든 최고의 숙박과 음식을 대접 받았다. 비결은 비수기 즉 2월 말 부터 3월 , 5,6월 , 9월 에는 잘 찾아보면 싸게 갔다 올 수 있었다. 동기들과 함께 간 발리를 시작으로 해서 내가 해외여행이라고 가본 것은 10번 밖에 안된다. 그 중 기행문을 쓴 것은 위 네 편, 아쉬운 것은 발리에 가서 친구들과 지낸 그 때가 가장 그립지만 기록이 없어 자세한 기억이 없다. 여행 마지막 날 산누리비치를 걸으며 모래사장에 쓴 I love you forever를 보고 쓴 시 한 편이 기록의 전부이다,

I love you forever

썰물 빠져나간 발리, 산누루비치 모래사장에 쓰인
I love you forever
썰물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믿은 걸까
저 무대책의 절규
여섯 시간도 못 되어 쓸어가 버릴
모래성 같은 사랑에 기댄
누군가의 비장한 혈서

함부로 밟지 못하고 비켜가는 믿음 뒤에
40년 전 약속을 의심하며 그라스 가득
파도를 부어 마시는 초로의 동기생들

눈 속 가득 담긴 남국의 태양이
불콰해 지고 있다

또 한 가지 하연수 동기가 자카르타에서 건너와 월드컵을 같이 보며 열광했던 기억도 있다만
아직 나는 건강하지만 아내가 나보다는 좀 덜 건강한 것 같아 걱정이다. 코로나가 끝나면 먼 나라부터 부지런히 다닐 생각이다. 내가 살고 있는 아름다운 지구를 따스한 눈으로 아내와 함께 소풍가 듯 다닐 것이다. 그리고 그 때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모아둔 기행문을 읽으며 병상에서도 지구라는 조그만 행성에서의 아름다웠던 풍경과 사람들을 떠올릴 것이다.
- 기행문이라지만 부족한 글을 읽어준 친구들에게 감사드린다.)

海印導師 20-07-13 06:33
답변 삭제  
몽고여행 기행문 잘 읽었소이다.

첫날 오성급 호텔의 일박, 둘째날 전통가옥에서의 일박, 교통지옥 울란바토로, 값싼 경비, 양고기 구이, 라마사찰 등 2곳 방문, 몽골보드카 맛, 초원, 마지막 여행지에서의 塞翁之馬 경험 등등 잘 읽었소이다. 명쾌하게 잘 쓴 기행문인지라~~~내가 직접 구경하고 온 것 같소이다.~~~ㅎ~~~

海印導師.  씀.
와이리 20-07-13 07:08
답변  
여행...
여행 후 이런 기행문을 남겨 두신 게  아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을 봐도 그때 그날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 오르겠지만
본인이 써 놓은 글을  다시 읽을 때는 더 더욱 생생할 것 같다.
제3자가 봐도 함께 했던 듯 느껴지니까...

와이리에게는  몽골 여행이 별로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짧은 여행 기간에 장시간 車를 타고 다닌다는 그 자체가...  ㅎ
해외 여행 경험이 열번 밖에(?) 안된다면서  어찌 몽골에 갔을까..

가까운
중국 홍콩 대만 필리핀 태국 말레이지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괌 사이판
캄보디아  왜국 등 이 나라들에  한번씩만 가도 벌써 열번은 될 텐데....
ysha 20-07-13 11:35
답변 삭제  
부족하다니? 충분히 좋은 기행문, 잘 읽었구만.

발리,
기록을 남기지 않아서 아쉽겠구나.
내가 좀 모자라서 기억 못했던,
어떻게 보면 큰 일은 아니 듯도 하지만,
친구에게 미안했다는 말을 전할 수 있었던,
내게는 참 좋은 기회를 준 여행이었다.
西岳 20-07-13 12:11
답변  
담 부턴 어디 여행갈때는
항상 시인 김일호 를 모시고
꼭 같이 다녀 와야 겠네

고귀한 조선실록을 썼던 史官 처럼
여행 기록이 낱낱이 기록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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