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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6-09 10:05
통영의 북한 기념관
 글쓴이 : 海印
조회 : 610  
ㅡ윤이상∼루이제린저∼지미카터 (공통점〓열라, 재수없다)

위 세사람은 한국에는 잔혹하고 북한에는 따사로운 사람이다. 윤이상이 어떤 인간인지는 더 이상 설명을 않겠다.(글의 서술 상 존대어는 생략하겠소. 걍~ 이해해 주시길 바라오!! ^^;;)

▷ 루이제린저. 독일 태생 작가, 히틀러 시절에 탄압과 투옥을 겪은 경험을 책으로 써서 전후 독일에서 제일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한국의 먹물들과 비슷한 변천과정을 밟는다. 즉,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좌즘(左―sm)이 마치 자신의 정체성인 양...하는. 그래서 자본주의보다는 사회주의 쪽 사상에 심취한 듯 보인다.

(( ※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개념이 약한 사람들을 위해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있어서 기본적인 공통점은 모든 생산시설과 수단의 국유화다. 다른 점은, 사회주의는 사유재산 인정, 공산주의는 사유재산 불인정. 분배에 있어서, 사회주의는 능력 만큼 일 하고, 실적 만큼 분배 받는다. 공산주의는 능력 만큼 일하고, 필요 만큼 분배 받는다.

공산주의가 망가진 이유가 바로 '능력 만큼 일하고, 필요 만큼 분배 받는다'에 있다. 나의 부양가족이 10명이고, 생산활동 인구가 나 혼자라면, 그냥 직정에 8시간 일하고, 10명분의 배급을 받으면 된다. 더 이상 열심히 할 필요도 없다. 완전 배급이니까. 더 열심히 일한다면 그 사람이 비정상이지 않겠는가? 각설하고.., ))

루이제린저의 책은 한국에서도 한때 공전의 히트를 쳤다. 그리고 한때 정보기관의 불온서적으로 탄압을 받았다. 왜 탄압을 받았을까?그건 그녀의 북한 짝사랑의 원인이었다.

루이제린저를 김일성에게 소개한 사람이 윤이상이다. 이 윤이상이 오길남씨 가족을 북한으로 유인해서 끌고들어간 바로 그 사람이다. 유명했던 1967년 '동백림 간첩단 사건'의 주역이다. 2006년 '진실위'가 조작이었다고 발표했다. 그들의 눈에는 북한공작원이었던 윤이상과 납북자 오길남이 보이지 않았나 보다.

1975년 한국을 방문한 후 슈피겔紙에 루이제린저는 '한국은 정보기관의 감시가 판치는 억압국가'로 묘사했으며,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마저 한국 정부의 조작극'이라고 썼다.

1980년 김일성의 초청을 받아 처음 북한을 방문했는데, '지상낙원'이라는 북한 당국의 선전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방북 후 출간된 수기 '또 하나의 조국'에서 그는 김일성을 '평화 밖에 염두에 두지 않는 지도자'로 묘사했다. 그 후로도 루이제린저는 김일성과 교류했고, 공산주의 북한에 대한 환상만을 퍼트렸다.

어떤가? 열라 재수없지 않는가? 혹자는 이런 말을 한다네. 루이제린저가 밉지, 글이 미운가? .....라고. 과연 그럴까? 그러면, 마르크스가 밉지, 마르크스시즘은 밉지 않다는 말인가? 김일성이 밉지, 주체사상을 밉지 않다는 말인가?그러면, 아....그건 경우가 다르지....라고 할거다.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이라면 이런 사안에 있어 선택적인 판단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이석기에 의해 새롭게 해석된) '송두률식의 내재적 접근법'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저수지의 둑을 허물 수 있다는 걸 알아주기 바란다. 악의 씨에서는 무조건 악이 나오지, 선이 발아하지는 않는다. 루이제린저에 심취한 독자가 루이제린저와 싱크로(synchronize)하지 조지부시(前 美대통령)와 싱크로하지는 않는다. 주체사상에 심취한 자가 종북과 싱크로하지 대한민국과 싱크로하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적어도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는 루이제린저의 책은 쓰래기로 분류해야 한다. 민족적 자존심이 있다면 말이다.

▷ 지미카터. 생존해 있는 전직 미국 대통령(제39대). 재임시절이 제일 '인기없는' 대통령이었으나, 퇴임 후가 제일 멋있는 대통령. 퇴임 후 땅콩농장으로 돌아가 농부로 전업한 대통령. 여름휴가 때 '사랑의 집짓기'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여 '해비타트 운동'을 국제적으로 보급시키는 데 공헌한 대통령. 국제적으로 인권문제에 있어 목소리를 내는 대통령. 자국의 국민이 인질로 잡힌 북한에 방문해 인질을 구해낸 전직 대통령. ..... 나름대로 지미카터는 멋진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단, 한국에 있어서는 그러하지★아니하다. 지미카터. 그는 한국에 있어서는 다크엔젤(Dark Angel)이다.

지미카터는 평소 인권에 대해 많은 일을 했다. 1976년, 도덕정치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곤, 자신의 주장했던 주한미군 철수를 시작한다. 그러나 주한미군사령관 등의 강력한 반발에 주한미군 철수는 벽에 부딪친다. 주한미군 철수는 곧 한반도의 공백을 말하는 것이고, 북한의 오판으로 도발을 감행할 여지를 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박정희 대통령(이하 '대통령' 생략)이 베트남전쟁에 파병하면서 까지 확보했던 (주한미군으로 인한) 전쟁억지력을 무너트리는 것이었다.

박정희가 월남파병과 맞바꿔 주저앉힌 미군들은 거의 휴전선 후방―즉 우리의 전방지역에 있었다.
미군이 단 한명이라도 사상을 당하면 ―미국 국회의 동의없이― 자동적으로 미군이 추가 파병되어 북한과 전쟁을 치룰 수 있도록 만든, 수천만 발의 지뢰보다 더 든든한 방어막이었다. 이것을 '인계철선★전략'이라 한다.

이 인계철선을 노무현이 ―자주국방을 빌미로― 해체해 버렸다.

전방의 미군을 빼서 오산평택 라인으로 물려버린 것이다. 이제 북한이 처들어와서 서울을 점령하고 휴전을 제안하면, 한 명도 다치지 않은 미국/미군이 괜한 피를 흘려가며 전쟁에 개입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북한이 휴전을 제안하면, 미군이 전쟁에 개입하려면 미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현재 스코어, 좋(?)된 상황이란 말이다.

(※ 인계철선: 지뢰의 뇌관에 철선을 연결하여, 적군이 밟지 않더라도, 아군이 철선을 당겨서 폭발하도록 하는 철선)

지미카터에 의해 주한미군 철수가 예정되었던 이때, 박정희의 핵개발 의지는 최고조에 달했다. 그것은 민족의 명운, 국가의 안전, 국민의 목숨을 지켜야 할 지도자로써의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 당연한 선택은 미국과 CIA는 좋아하지 않았다. (김진명作 '한반도'에서는 이 때문에 박정희가 암살당한다. believe it or not)

1979년 6월 29일. 지미카터가 한국에 왔다. 표면상으로는 박정희의 인권탄압과 장기집권이었지만, 속내는 한국의 핵개발 저지였다. 이날은 한국의 제2의 국치일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서울공항(성남 K-2)에 미 대통령 전용기가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날 일기가 불순했는지, 박정희와 지미카터의 신경전의 일환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미 도착할 시간이 지나있었다. 공항에 미국 대통령의 예방을 영접하러 나왔던 박정희에게는 뻘쭘한 일이 발생했다. "이거...존심을 버리고 더 기다려 줘야 하나? ㅆ~ 존심 상한데 돌아갈까?" 이런...

지미카터가 미국의 대통령 자격으로 방한하는 것이라면, 박정희는 한국의 대통령의 자격으로 공항에 영접을 나온 것이다. 바로 대한민국 대통령의 자존심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두시간 후에 지미카터가 공항에 도착했다. 영접나온 박정희와 악수한 손을 두어번 흔들고는 곧바로 미8군 영내로 들어갔다. 영빈관으로 가시자는 박정희의 말에 콧방귀를 불고는...

그날, 박정희는 그렇게 무너졌다. 약소국 대한민국과 약소국의 대통령인 박정희가 함께 무시당한 제2의 국치일이었다.

다음 날, 박정희는 지미카터에게 국방에 대한 연설을 일방적으로 쏘아댔다. 듣기가 짜증난 카터는 통역을 통해 메모지를 건넸다. "아~ 씨바, 그냥 갈까?"였다. 진짜다. 내가 봤.....지는 않았다. 그렇게 들었다. ㅆㅂ.. -,.-;;

그리고, 4개월 후 박정희는 암살당했다.

오마르 토리호스(파나마 1981.8 사망),
안와르 사다트(이집트 1981.10 사망),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소련 1982.1 사망),
김일성(북한 1994.7 사망).

이들의 공통점은 지미카터를 만난 후 가까운 시일 내에 죽은 사람들이다.
아...아니다, 카터를 만난 김영삼이 3년 후 IMF로 '정치적인 사망'을 당한 것도 추가해야겠다.
그래서, 국제 정치계에서는 지미카터를 '다크엔젤(Dark Angel)'이라고 한다.

어쨌거나, 1994년, 북한이 NTP 탈퇴, IAEA의 핵사찰 거부, '서울 불바다'를 지껄이며 팽팽한 긴장의 고삐를 당기고 있을 때, ―비교적 북에는 관대했던 저 재수없는― 지미카터가 북한에 방문해 김일성과 대화 후에 북의 IAEA사찰단의 북한에 체류 허용을 합의, 김일성의 한국 방문을 주선했다.

이 건을 좋게 볼 이유가 없는 것이, 지미카터가 한국을 위해 비즈니스를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이 북한의 손을 잡아주어 국제 무대로 끌어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내적으로는 "미국마저 위대한 수령 김일성 앞에서는 설설 긴다"는 선전에 이용되는 것다. 그만큼 김일성의 통치가 안정적으로 연장된 것이다. 그러나 죽음의 신도 김일성을 비켜가지 않았다.

이어지는 남북화해무드는 북한을 고립시켜 고사(枯死) 시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번번이 무산시켜 기사회생의 기회를 제공하고, 남북경협이니 뭐니..., 뒷통수만 맞는 사건이 벌어지게 됐다.
북한 경수로 사업에 얼마나 많은 돈이 버려졌는지는 설명할 필요조차도 없다.

이런 재수없는 일이, 2011년 또 발생했다. 지미카터가 납북된 자국민을 구하러 북한에 들어간 것이다. 물론 북한 체제에 이용되었다. 그러나 김정일은 지미카터의 '죽음의 사신' 이미지 때문에 만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북한에 남겨둔 죽음의 사신이 임무를 소홀하지 않았다. 그해 김정일도 죽는다. 팩트다.

윤이상, 루이제린저, 지미카터......열라, 재수없다.
그래도 지미카터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

"지미야~! 제발 김정은을 만나다오~!! 이왕지사 만나는 거, 악수한 손을 열라 흔들어랏~!!"

정필립씨가 2012년경 쓴 글을 2014년 경 재차 포스팅하였고, 그것을 페북에 올려두었다가, 현재 심심해서리 이곳에 퍼 나르다.

海印導師. 씀.

海印 20-06-09 10:08
답변  
오늘은 드라큐라의 날(경찰병원에서 공복 피검사하는 날)이다.

늦게 사무실 출근하여 몇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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