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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3-17 04:08
천지분간도 못하고 함부로 나대고 까불지 마라.
 글쓴이 : 海印
조회 : 470  

오늘은 지난 잘 대운이 좋아서 무혈구테타에 성공하여 42년간 권좌에 머물면서 <나는 왕중의 왕이다>라면서 천지분간을 못하고 함부로 처씨부리면서 까불다가 국제사회의 질시를 받고 유럽과 시민군의 저항에 침몰하여 도망하다가 농수로에서 비참하게 사살된 무아마르 알 카다피의 죽음을 목격하고, 당시 쓴 글을 이곳에 옮긴다. -------이 하 전 문 내 용-------

무아마르 알 카다피! 그의 생몰연대는 다음과 같다. 1942년 6월 7일 ~ 2011년 10월 20일 (69세) 지난 2월 15일 리비아 제2 도시 벵가지에서 인권변호사 연행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 지 8개월 만에 미국과 유럽의 지원을 받은 시민군과의 피비린내 나는 리비아 내전 결과 패배 후 사망했다. 중동의 대(大)아랍민족국가를 추구하던 아랍지도자의 죽음치고는 비참했다.

그는 리비아 육군 대위 시절 약관 28세의 나이로 무혈쿠데타를 성공해 부패하고 무능한 왕정을 무너뜨리고 권력을 잡은 후 무려 42년간이나 철권통치로 리비아를 좌지우지한 근래에 보기 드문 대단한 정치인이다. 그는 독설가로도 유명했다. "마호메트가 창시한 이슬람교 이후에는 진정한 종교는 없다." "나는 아프리카의 왕이요! 왕 중의 왕이다." 권력에 취해서 말년에 이를수록 그의 아집과 자만에 찬 발언은 지성 있는 세계인의 야유를 받을만 했다.

그러나 그는 조국 리비아를 위해서 애쓴 탁월한 정치력도 돋보인 인물이다. 즉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일으켜서 사막을 푸른 초원으로 만들고자 하는 그의 인간의지는 높이 살만하다. 석유를 팔아서 막대를 부를 거머쥔 그는 광대한 리비아의 사막을 푸른 초원으로 탈바꿈하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세계 굴지의 건설회사(대한민국 동아건설 등)를 끌여들여서 사막을 관통하는 거대한 <사막의 농경지화 사전작업인 대수로 공사>를 강행했다.

또한,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리비아인들은 전부 무상의료 혜택을 받을 뿐만 아니라, 리비아 병원들은 최고 수준의 의료장비를 갖추고 있다. 유능한 젊은이에게는 정부 지원의 해외유학 기회가 주어지고, 결혼할 때는 이자가 없는 정부대출금을 약 5만 달러 정도 지원한단다. 그 외에 농업종사자에게는 세금이 감면되고, 휘발유와 빵값 등 생필품 가격은 저렴하며(이라크의 후세인 정책과 같다), 정부보조금으로 인해 자동차 가격은 유럽보다 낮아서 대부분 가정이 차를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한계는 바로 다음에서 드러났다. 즉 <모든 것이 알라 神의 뜻이다>라는 명제를 내세운 뒤, 경제적 주도권 획득을 위한 국제적인 정보력 싸움의 냉정한 진면모를 파악하지 못하고 아프리카 북부의 지중해를 접하는 지리적인 이점과 <타국정치 불간섭>이라는 국제정치 불문율의 혜택 속에 우물 안 개구리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국제회의장에서도 자신의 분수와 위치를 모르고 함부로 지껄이고 미친 듯이 허둥댔고, 결국에는 리비아 자국 내의 반대파의 민주화 요구를 거부하고 무력으로 진압하다가 국제여론과 미국과 유럽국가의 지원을 등에 업은 반대파와의 내전에서 패하고 최종적으로 미국의 뛰어난 정밀타격의 희생양이 되면서 차량 이동 중에 폭격을 당하여 농수로 관 속에서 피신하다가 뒤따라 그를 추격한 분노한 시민군의 총에 비참하게 사살당했다. 결국은 21세기의 검은 황금인 리비아의 막대한 석유를 점탈하려는 미‧영‧불‧이탈리아 등 선진국들 간에 벌어진 경제력 쟁탈전과 세력싸움의 희생양이 된 셈이다.

무아마르 알 카다피가 아집에 빠지지 않고 좀 더 평범한 한 인간(육군 대위)으로 출발했던 초심을 잃지 않고 시대를 잘 타고 시대를 잘 이용한 군인이라는 점을 스스로 뼈저리게 각성하면서 선진국과 적당한 선에서 줄 것은 주고받을 것을 받는 <국제적인 상거래상의 양보와 질서 원칙>을 충분하게 지키고 <쓸데없는 독설을 줄이고> 리비아 전역에 퍼져 있는 각 부족의 수장들이 요구하는 것을 적당하게 들어주고(석유판매대금의 50%를 분배하는 정치력 발휘 등) <혁명적인 제2의 리비아 대 건설>을 주창했더라면(본인도 권력을 포기하고 뒤로 물러나는 형태를 취하면서 능력 있는 적당하게 뛰어난 지도자를 선발하여 권력을 물려주는 정책을 시행했더라면) 오늘날 총살당하여 시신이 땅바닥에 뒹굴면서 능멸당하는 비참한 현실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무려 42년간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으며 자신의 의지대로 한 세상을 살아왔기 때문에 사실 냉정한 인간의 사리판단능력과 분별력이 이미 사라져 버렸고, 최근에 당한 비참한 말로는 이미 정해진 순서를 밟는 절차에 불과했다. 즉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또한, 특정 인간의 사회적인 성공과 실패의 잣대를 떠난 순수한 인간적인 현명함과 어리석은 인간임을 판단하는 기준은 이러하다. 즉 자신이 죽을 시점을 미리 아는 인간과, 죽는 시점을 모르고 아니 아예 죽는다는 것을 도외시하고 허둥지둥 자신의 목표만을 위해서 정신없이 살아가는 대부분의 인간군상으로 양분된다. 그것을 누가 감히 부정할 것인가?

철학적으로 갈파하면 인간의 탄생과 죽음은 동일 선상에 놓는다. 그렇기 때문에 아름답게 탄생하고 열정적인 삶을 살아왔다면 아름답고 깨끗한 죽음을 맞는 것도 인생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중요한 일이다. 누구든지 특정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자신의 그릇 크기와 쓰이는 시기와 사라지는 시기를 미리 갈파하고 초연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고 실행해야만 현명한 인생을 산 위인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바로 그렇게 인생을 살아가야만 특정 인간이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고 제대로 사라지는 유일한 길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바로 현재 시점에서는 인간의 시야로 목격할 수 없는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한 학문인 <음양오행학과 주역 육효점과 관상 수상과 성명학과 점성술> 등의 활용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 국내 유명산악인 중의 한 사람인 박영석 대장이 히말리야 등산 중 며칠째 연락이 끊긴 상태로 생사를 알 수 없다는 불길한 소식이 전해진다. 현지 기상 악화로 인하여 헬기 구조작업조차 시행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한다. 유명산악인 중 한 사람인 엄홍길 씨는 국내에서 건재하지만 희말리야 등반 중 실종된 박영석 씨의 생존 여부는 현재 시점에서 판단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래서 중생들에게 권한다. 즉 어떤 큰일을 감행할 사람들은 전반적인 면에서 정세를 제대로 판단하고 감행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곧 함께 사는 그의 가족들에게도 행복한 삶을 선사하는 방법이다. 그들이 생각하건대 "현재의 시점에서 판단하여 지금까지 스스로 노력과 힘으로 이루어 왔는데 더 이상 무엇을 주저하며 의지할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오만과 자만심을 버리고 <삼가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사물을 대하면 끝내는 죽음을 면할 수 있다>는 대명제를 받아들여서 특정 인간이 인생을 강건하게 유지할 수 있는 명확한 삶의 이치를 깨닫고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권유한다. 소위 전문가에게 부탁하여 한 번쯤은 자신의 그릇됨을 파악하라는 것이다.

미래는 확정적으로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특정 인간이 <지극한 일심정신으로 삼가 두려워하고 냉정하고 명확하게 사물을 준비하고 사태를 대비한다면 상당 부분 장차 길함의 방향으로 유동적으로 당사자에게 임하게 할 수 있다> 물리적인 변화는 동으로 가든지 서로 가든지 상관없다. 다만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특정 당사자의 위치, 즉 주위 동서남북과 상하 즉 사방팔방에 걸친 위치와 공간이동으로 결정된다. 그것을 좀 더 물리적으로 안전하고 행복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진행함이 바로 사물의 이치를 깨달은 특정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의 일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제 조금이나마 이 글을 읽는 중생들은 海印의 意圖를 喝破하셨는가? 아닌가? 그러나 그것을 몰라도 좋다. 그것이 바로 본명의 주어진 그릇의 한계요! 진퇴와 머물 시점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생명의 출발점이요! 화신인 붉은 태양은 동쪽에서 떠오르고 서쪽으로 진다. 일체중생들이 언제 어디서나 항상 강건한 정신과 신체를 누리면서 행복한 나날과 시간시간이 되시길 염원하면서...

삼가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이상과 같은 글을 쓰다.

辛卯年 戊戌月 庚戌日 辛巳時에

가락동 경찰병원 앞 모처에서... 海印.


와이리 15-03-17 07:55
답변  
가락동 경찰병원 부근이 한때 와이리 나와바리였는데
왜 그 부근에 머무르고 있었을꼬.......
머물 수 있는 곳이라고는
경찰병원 입원실 가락호텔 캘리포니아호텔 밖에 없는데...
     
海印 15-03-17 10:01
답변 삭제  
와선생 사무실 근처는 확실한 데, 입지상 정확한 장소를 공개할 수는 없느니라! 청문회라도 나갈 수 있으면 기억이 안 난다고 둘러대면 될 터인데....으하하하

기냥 상상에 맡기노라. ㅎㅎ

海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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