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가 태어난 그리스 동북부 할키디키는 축복받은 땅이다. 아름다운 휴양지이고, 광물(鑛物) 자원의 보고다. 상당한 양의 금(金)이 땅속에 숨 쉬는 이곳에서 '엘도라도 골드'라는 캐나다 금광 회사가 2011년부터 채금(採金) 사업을 벌이고 있다. 당시 그리스 정부는 해외 투자 유치의 상징적 사례라며 자랑했다. 엘도라도 골드는 1조원이 넘는 사업비를 투입 중이며, 실업률 30%가 넘는 할키디키에서 2000명을 고용해 지역 경제에 단비를 뿌리고 있다.
그런데 순조롭던 사업은 올해 초 그리스에서 급진 좌파들의 연합 정당인 시리자(Syriza)가 집권하면서 갑자기 좌초 위기에 놓였다. 외국 자본에 적대적인 시리자 정권이 엘도라도 골드의 사업 허가를 취소하겠다는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그러자 금광이 산림을 해친다고 비난해온 환경 단체가 환호성을 질렀다. 외국 기업이 자원을 파내는 게 못마땅한 적지 않은 국민도 반겼다.
하지만 금광 덕분에 활로가 생긴 할키디키 주민에겐 비상이 걸렸다. 금광의 노조 간부들이 아테네에 찾아가 "일자리를 잃게 되니 살려달라"며 읍소했지만 정권 실력자들은 못 들은 척했다. 금맥(金脈)이 터지면 뒤따를 엄청난 세수(稅收)는 외면한 채 외국 회사가 돈 벌어가는 건 막고 보겠다는 식이다. 시리자 정권은 공기업을 해외에 매각해 구멍난 재정을 메우겠다는 이전 정부의 계획도 올스톱시켰다. 국고(國庫)에 돈이 마르든지 말든지 국가적 자존심을 세우는 게 우선이라는 태도다.
이렇게 해외 자본에 대한 반감을 키우는 흐름의 중심에는 야니스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이 있다. 그런데 정작 그는 외국물을 오래 먹은 '강남 좌파'다. 아버지가 거대 철강회사 회장이었던 그는 아테네의 유명 사립고를 나와 영국에서 10년간 공부하며 박사까지 마쳤다. 이후 호주 시드니대에서 경제학 강의를 하며 12년간 살았다. 그래서 호주 국적(國籍)도 가진 이중 국적자다. 미국 게임 개발회사의 경영 고문을 맡아 해외 자본의 수혜를 입기도 했다.
그런 바루파키스가 비행기 이코노미석을 타고 다니고 EU 국가들을 향해 "(그리스에) 재정적 물고문을 가하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자 그리스 국민은 환호를 보냈다. 그러나 말의 성찬(盛饌)은 듣기에는 달콤할지 모르지만 주린 배를 채워주지는 못한다. 현금이 바닥난 그리스 정부는 사회보장기금을 헐어 공무원 월급을 주는 형편이다. 해외 자본이 싫다지만 나라 밖에서 구제금융을 수혈받지 못하면 연명할 수 없는 자가당착에 빠졌다. 문명의 발상지로서 품격은 온데간데없다.
외국 자본의 득실을 냉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무작정 배격하면 결국 자기 발등을 찍게 된다. 엘도라도 골드는 2010년 미 포천지가 선정한 '글로벌 100대 고(高)성장 기업'에서 1위에 오른 회사다. 그런 회사가 뒤통수 맞는 꼴을 보고 누가 그리스에 투자하고 싶겠는가. 그리스를 보면 개방 경제를 채택한 국가가 가지 말아야 할 길이 또렷하게 보인다.
조선일보 손진석 국제부 기자
2015.04.30일자 海印 위 글을 퍼 와서 싣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