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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6-07 14:40
歸農 關聯 回憶?
 글쓴이 : 海印
조회 : 171  

경주중학교 후배인 필명 "늑대의 눈물"이란 친구가 귀농 운운해서리~~~

농사와 관련한 반항과 방황으로 얼룩진 海印 청춘시절의 흔적을 들추게 만드는구나~~~

때는 壬子年 정도, 초등친구들과 술을 진탕 마시고 귀가 중에, 불국사 구정동 소재 원불교 인근 도로상에서 패싸움에 휘말렸다가~~~

졸지에 경찰에 쫒기는 신세가 되어서 도망한 곳이 경남 울주군 웅촌면 통천리 大 農家(누님댁)였다.

당시 그 집은 논이 광터 비롯 이곳 저곳 좌우지간에 일 년에 나락 200석을 수확하는 대농가였다.

때마침 추수를 하는 계절이라서~~~꼼짝없이 어디로 도망을 못가고~~~ 그곳에서 추수 일과 술과 담배(당시는 하루 세갑씩 피우는 골초였다)로 경찰 추적이 끝날 때까지 세월을 보냈다.

다 설명하기는 그렇고~~~ 좌우지간에 당시 농사 일에 억세게(디~지게) 혼쭐이 나서 그때 작정했다. "향후 내 인생에서 두번 다시 지게를 등에 붙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일년 후 장사(중화요리집 운영) 를 거치면서 전투경찰대를 나와서 현대건설 토목기사, 경찰공무원 등의 직업을 거쳐서 현재의 海印東洋哲學院長의 職責을 가지게 되었다.

農事 (농사 天下之大本이지만~~) 그것 쉽사리 아무나 짓는 것이 아님은 틀림없다. 당시를 생각하면~~~도망갈 곳 없는 당시 극도의 심한 노동이 진절머리 난다는 생각밖에 안 난다. 아울러 그곳에서 만난 절세미인 남자음성의 여성도 아울러 생각나는구나. ㅎㅎ

그 녀가 외사촌 형님의 처제라서리~~~아니 당시도 남자 음성의 여자는 본시 반드시 과부가 된다는 관상학문을 알고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 으하하하

海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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