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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0-10 13:17
전국 동문가족 남산등반대회 행사
 글쓴이 : 최세영
조회 : 615  


매년 10월 셋째 일요일에 실시해 오던 경주중,고 전국동문 가족
경주남산 등반대회가 올해는 셋째일요일날 거행되는
동아마라톤 행사의 복잡함을 피하여 넷째 일요일에 거행됩니다.
장소도 통일전 인근 주민들의 소음공해 민원 때문에
교리 월정교 주차장으로 변경 실시 되오니 그날 참석 하시는 전국의
30,21동기들은 착오 없길 바랍니다.
자가 차량 이용시 주차는 박물관,오릉,교리입구 유료 주차장이나
행사장 인근 도로상에 재주껏 주차 하여야함도 참고 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올해의 전야제는 두달전 부터 장소를 예약하려 했으나
여의치 못했음과 아울러 전야제 마치고 늦게 귀가한 다음
이튿날 아침 일찍 등반에 참석 하자면 피로도가 상당 할것 같아서
올해는 휴식년을 가져서 어떤면이 나은건지 평가 하고자
경주본부 임원들과 결의 하였으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30,21 전국 동기 여러분!
여러분들의 전국 동문 행사에 뜨거운 성원 있으시길 기대 합니다.

*2017 전국 동문가족 남산 등반행사 일시
일 시 : 10월22일(넷째 일요일) 09시부터
장 소 : 반월성뒤 남천 "월정교" 주차장


海印 17-10-10 13:24
답변  
좋은 행사임다. 물론 절친의 자녀 결혼식이 선릉역 근처에 없을지라도~~~경주는 너무 멀어서리~~~ㅋ~~~자꾸 적극성(옛날에는 불원천리 달려갔지라~~~ㅎ~~~)이 자꾸 떨어진다고라~~~ㅎ~~~

좌우지간에 건강도 다지고 동문들간의 우애를 돈독하게 다지는 등반대회가 되기를 빕니다.~~~ㅎ~~~

海印.
西岳 17-10-10 13:31
답변  
최세영 본부 총무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올게는 쉬었가 갑시다 가 좋게  들립니다.
海印 17-10-10 13:49
답변  
위 사진이 문화재인가 명칭이 뭔가는 잘 모르겠지만서도~~~

하여간 종교적으로 미친(제삼자의 언동에 쉽게 휘말리고 사물의 냉정한 판단능력이 부족한 불쌍한 작자일 가능성이 크다) 작자에 의해 우상숭배 대갈을 떼 버린다는 패악한 행동의 결행이 심히 보기에 거슬린다.

하긴, 돌을 가공한 석불상일 경우지지만~~~그것도 소나 말이 아닌 인간의 형상일진대~~~저거 머리를 가공하여 붙이는 행위(?)도 문화재관리법상의 위법이 되지랄?

좌우지간에 경주 남산에 저러한 석불이 많이 보인다. 즉, 인간 종자의 쓰레기를 대표하는 상징물인듯 싶어서 심히 보기에 좀 그렇다고라~~~

종교적인 신념과 "사물법칙의 진실"인가 "거짓"인가의 구별 방법은 간단하다. 즉, 고통을 느끼는가? 아닌가?로 판단하면 확실하다.

저 불상을 볼지라도 몸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라. 그러나 몸과 마음이 하나일진대~~~결국~~~불쾌감이 오는 것을 말릴 방법이 없지랄~~~ㅋㅎㅎ~~~

좌우지간에 기냥 그렇다는 느낌일 뿐이외다. 다만, 인간의 역사에서 소위 <正義>는 없다는 사실을 알면~~~ 그저 아무런 이유없이 태어났다가 이리저리 살다가~~~~ 팽하고~~~갔다는 소릴 듣지는 않겠지랄~~~ㅎ~~~

海印導師.
와이리 17-10-10 14:18
답변  
그날, 월정교 주차장에서 어디로 등반하는 공?    등반 코스.....??
沼岩 17-10-10 14:21
답변  
남산 용장사지의 마애불과 석탑이다.
바위에 새긴 마애불은 저녁 노을이 들 무렵 선이 잘 나타나고,
석탑 형식의 석조여래좌상은 머리를 잃어 버렸다.
그 위쪽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키가 큰 탑이 있다.
기단부를 남산 바위를 그대로 이용했으니,
그 큰 바위까지 탑의 일부로 보니 그렇다는 이야기...

경주에는 머리없는 불상이 숱하게 많이 있다.
박물관에는 그 머리를 나중에 찾아서 붙인 경우도 있고,
아마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많이 손상 되었고,
보통 절이 있던 곳이 양지바르고 명당이라하여,
절터에, 혹은 탑이 있는곳은 탑을 무너뜨리고 세도가에서 묘를 쓰기도 했다.
     
海印 17-10-10 14:32
답변  
그려~~~세도가 중에 이하응(대원군)을 잘 알고 있겠지라~~~ㅎ~~~

다음 海印의 글을 읽어보면~~~절을 불사지르고 무덤을 들인 무지한 작자의 결과적인 업보가 보일 수 있다.~~~ㅋ~~~

즉, 예를 들어 조선조 풍운아(風雲兒) 대원군 이하응의 경우를 보자! 그는 한 때 운수가 불길하여 저잣거리에서 술로써 방탕하던 위인이었다. 방계 왕족이었던 이하응은 평생을 자신의 부친 유골을 명당에 모셔 군왕을 배출하는 것이 그의 꿈이었고 인생이었다. 그는 과객들과 지사(地師)인 정만인(鄭萬仁)을 상대로 풍수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였고,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1845년 4월 경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소재 가야산 자락에 경기 연천에 있던 ‘남연군 묘’를 이장하였다. 당시 정만인 풍수의 말이 "이 터는 절터이나 2대 군왕이 나올 수 있는 명당이다"라는 말을 내뱉자, 이하응은 그 말을 盲信(맹신)하여 그 자리에 있던 사찰 주지를 설득하고 매수한 후 그 절에 불을 질러 폐사를 만들어 기어코 부친의 유골을 이장하였다.

후세의 풍수가들은 말한다. "그 터는 군왕지지요! 고종•순종 등 이대의 왕을 배출한 명당이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라! 시운이 불리하고 능력이 없어 조선조 오백년 왕조를 망하게 한 장본인이 두 왕 아닌가? 그리고 신라와 같이 천년사직을 지키든가 아니면 중국과 같이 최소한 이백년을 유지하는 왕조가 되어야 그 터를 ‘천하의 군왕지지’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이지, 그래 며늘인 명성황후가 왜놈 낭인들에게 칼로 난자 당해 화장을 당하고, 더 나아가서 500년 이씨왕조를 망하게 2대 군왕을 배출한 그 터를 천하의 군왕지지라고~~~개가 웃고, 소가 웃는다. 당치도 않는 허튼 소릴 하질 말라. 그 터는 "亡國之地(망국지지)"일 뿐이다.

그것도 잘 모르고 소위 풍수를 한다는 위인들은 모두 그 터가 이대의 왕을 배출한 "군왕지지 명당"이라고 앵무새 같이 떠들고(문하생에게 500만원이면 족할 이장비를 6,000만원 받아 처먹는 파렴치한 사깃꾼 조 某 풍수 曰~~ㅋㅋ~~) 있는 중이다.~~~ㅎ~~~ 실제 當 海印(해인)이 풍수지리학문 사부 남헌 이준기 선생님을 모시고 같은 산소를 답사하여 입수절로 약 650미터 올라가본 바, 주산으로부터 내려오던 來龍(래용)이 완전히 잘려 있고(어떤 자는 이를 '탈사•박환•과협'이라고도 말하나 쓸데없는 헛소리일 뿐이고, 정확히 말하면 龍脈(용맥 즉, 산맥)의 허리가 완전히 잘려져 나간 것이라 보는 측면이 정당하고 올바르다) 특히 좌측 뒤쪽에 저수지를 막아 물길을 멈추지 않았다면, 삭풍이 몰아치는 "大 亡國之地(대 망국지지)"인 것이다. 그 산소를 이장하고 정확하게 65년 후 이씨조선은 소위 "庚戌國恥(경술국치)"를 맞았던 것이다.

당시 대원군 이하응은 탐욕에 눈이 어두워서 그 터에 있던 사찰을 불사지를 때 이미 끝장이 났다. 그 후 이하응은 죽어서 경기도 고양군 공덕리에 묻혔다가 순종 때인 1906 병오 년에 경기도 파주군 대덕리 某터로 이장 당하였고, 그 자리는 1966 병오 년에 미군부대가 들어오면서 또 이장을 당하였다고 한다. 최후로 이장 당한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창현리 산22-2에 소재한 터(http://dailynews777.tistory.com/847 http://list-box.tistory.com/295)를 답사 하였던 바, 그 터는 전혀 풍수지리 학문을 고려하지 아니한 '망지'인 것이었다. 그러할 경우 두 번이나 이장하여 유골이 공기에 노출되고 오랜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유골 조차도 산화되어 없어지게 되는 형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게 된다. 생전에 척화비를 세우며 서양오랑캐를 그렇게도 증오하던 이하응이었지만 모순되게도 죽어서 까지 美軍事施設(미군사시설)에 자신의 명당을 빼앗기는 수모를 당한 그를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소위 군왕의 자리에 눈이 어두워서 절 터를 빼앗은 과보나 업보로 자신의 아들과 손자가 500년 왕조를 빼앗기고, 더욱 나아가서 죽어서 자신의 이장한 명당조차도 빼앗기는 업보를 짊어진 사나운 모양새를 두고서 말씀이다)

말을 바꿔서, 소위 자손이 그러한 군왕이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군왕의 자질이 부족하여 만인을 풍족하게 먹여 살리지 못하고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해주지도 못하는 위인이 군왕이 되면 수만 백성에게는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재앙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가까운 역사(마눌과 싸움끝에 마눌의 막말?에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자살?한 위인)에서 그러한 사실을 여러분은 이미 충분히 목격하고 있지 아니한가?~~~으하하~~~

海印導師.
          
와이리 17-10-11 00:08
답변  
세상에는 그 이상 더 좋은 묘터도 있긴 하겠지만
남연군 묘터에서 王이 2명이 나온다고 했고 또 나왔으면
그 묘터는 훌륭한 묘터이자 명당이라고 생각한다.

그 묘터가 아니었더라면
어찌 이하응이 대원군이 되었겠으면
그 자손이 고중 순종임금이 되었겠는가.......
그 시절의 이하응이 그보다 더 좋은 묘터를 어찌 구했겠으며
그보다 나은 삶을 어찌 살았겠는가...

어차피 한 시대  한 세상을 살다가는 인생인데
한 시대를 풍미했으면.... 그게 명당의 덕(?)이라면 덕이라고 본다.
명당이 있고  또  발복이 있다고 한다면....  안믿지만~

조선왕조  27명의 왕외에  또 다른 임금이 나왔던가....?

500년 왕조 27명 왕들중에서 2명이 그 자손이라면 대단한 거다.
이하응 본인은
왕이 아니면서도  왕보다 더한  왕같은 삶을 살았었고....

노무현대통령이 간 거는  그의 성격 탓이라고 생각한다.
구차하게 연명하느니  앗싸리하게 가겠다는....

김대중대통령도 정치를 안하겠노라며 살려달라고
상소문까지 써가면서 연명한 후에
일국의 대통령까지 한 것도  그것 또한 그의 성격 탓이지만
어찌 되었던 간에
아무나 왕이나  대통령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와이리는
단 한달만 대통령할 수 있다면 모든 걸 버릴 수 있다.
단 한나절이라도 괜찮지만 너무 짧고...... 즐길 여가가 없어서... ㅎ


남산등반대회 행사 글에
괜히  쓸 데 없는  명당 타령이라니....(總長  미안)
海印 17-10-11 07:04
답변  
천하의 사깃꾼 조 모 풍수 변명성 야글 옮기거나 하덜 마소~~~그시끼 내가 합정전철역 근처 모 술자리에서 "야 이 사깃꾼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신의 문하생에게 사기를 쳐먹다니~~~쥑일넘 아가리 닥쳐라"고 술상을 차 엎어 버렸던 적이 있던 넘이다고라~~~ㅋ~~~

참고로~~~강남역 근처의 강(이 자가 술자리에서 개인적으로 아래의 사연을 하소연하는 바람에 알게 되었다고라)모 특허변리사에게 조상 산소를 姜家 자기네 산의 터에 이장해주면서리~~~문하생에게 500만원이면 족할 이장비(풍수비 300만원을 보태도 800만원이면 족한 금액)를 6,000만원 받아 처먹는 파렴치한 사깃꾼 조 某 풍수 ~~ㅋㅋ~~
     
와이리 17-10-11 08:32
답변  
대부분 사람들은 
평소에 풍수의 풍字를 거의 입에 올리지 않으니까  걱정마소~
조수창인지 누군지도...  또  변명성인지  뭔지도  모를 뿐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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