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3-11 20:32
병을 마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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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상곡
조회 :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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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 추정추정 흩뿌리는 빗줄기를 창가에 서서 한참이나 보고 있다. 버스가 지나가고, 택시, 자가용이 바삐 움직인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서둘러 사라진다.
경주를 몇 번 드나들었다. 며칠 동안 자궁에 큰 혹이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자식없는 이모는 결국 암으로 밝혀졌다. 어떻게 해야 하나? 80노인인데, 수술을 해야 하나... 그러면 갑자기 건강 상태가 안 좋을 것인데... 며칠 동안 피를 수없이 쏟았다니... 암이 많이 번진 모양인데...
죽음을 맞이하여 다시 인생을 생각하게 된다. 많은 것을 느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 주어진 운명에 순종하고 침착히 대응하는 것, 그리고 받아들이는 것... 그 이외에는 없는 듯 하다.
차를 몰아 거리로 나섰다. 빗방울은 기분좋게 유리창에 부딪쳐 흘러내리고 주변의 차들은 홍수를 이루었다. 생각해 보니... 봄비다. 대학 신입생 때 대학로에서 맞았던 봄비 생각이 난다. 그때는 우산 없이 맞는 봄비도 상황은 처연하였으나 젊음으로 암울하지는 않았다. 수십년 지난 지금 무엇을 이루었던가? 다시 오늘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무엇을 쫒고 있는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내가 그렇게 가지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라디오에서 안희정이 오후 3시에 성폭행에 대한 기자회견을 한다고 한다. 나쁜 인간들, 그런 이중성을 가지고 지도자로 군림한 세월이 수십년, 양심이 기초되지 못한 이 나라는 희망이 없다. 그래도 그 인간을 미워하지 말며 사랑하라했는데 ...그렇지만 어찌 냉정히, 이성적으로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다만 세상 저 밖의 일로, 남의 일로, 치부할 수는 있어도....
가만히 생각해 본다. 올해로서 이 직장의 내 방도 사라지게 된다. 모든 책들은 버려져야 하고 새로운 생활의 패턴을 짜야한다. 좀 더 시간이 흐르면 우리 집에도 내가 떠나야 할 순간이 올 것이다. 아내가 먼저일지... 내가 먼저일지 알 수 없지만....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떠오른 단어가 “모든 저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먼저 가 계세요. 나도 그리 오래지 않아 뒤따라 갈 거예요.”라는 생각이었다.
갈수록 분명해지는 것은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을 순간순간 깨어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정신차리는 것 뿐이다. 지난날 매일 읽던 “금강경”을 다시 꺼내 하루 한번 이상 읽으며 삶의 무상함을 즐기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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