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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17 18:34
오늘이 戊申일이라~~~
 글쓴이 : 海印
조회 : 283  

오늘 아침에 구룡포에서 아점을 잘 먹고나서~~~

포항 죽도시장에서 소암을 만나서 죽도시장 20만평 중 100여평만 구경하고 나서~~~

멸치 上品 2박스를 선물받아서 잘 올라온바, 조금 전 동백동에 도착했소이다.

와이리가 궁굼해하던 경주 포함 서울 海印導師의 친구 모임 명칭은 이렇소이다.

즉, 1976년 전투경찰 재대후 결성한 첫 모음이 명칭은 <옥돌회>였다.

재차 2000년 경, 경진년에 재결성할 당시의 모음 명칭은 <無門同志會>였다. 無門이란? 즉, 경주중고 경주공고, 월성중고고, 문화중고교, 신라중교, 경주여중고교, 건화여중고교 등 모든 옛날 중고등 학창시절, 자의든 타의든 좌우지간에 당시 東方敎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을 다 포섭한다는 의미로 海印導師가 재결성회의 명칭과 기타 회칙 등 모든 것을 지은 기억이 있다.~~~ㅎ~~~

좌우지간에 금번 포항 모임도 잘 만나서 잘 놀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올라왔슴돠~~~ㅎ~~~

海印導師.


와이리 18-05-17 20:41
답변  
근화여중.고.....  이례(의례?)할배교~ ㅎ
구룡포에는
유명한 전복죽집이 있고, 유명한 찐빵집이 있는데...
海印 18-05-18 05:40
답변  
전복은 회를 대신해서 먹었고, 찐빵집에 가 보니까는 ~~~

주인이 아파서 문을 닫았다고 하더라만~~~

와이리야~~~조또 나팔을 불려면 제대로 불라.

즉, 이례가 아니고 제대로 알아라. 성경신약 로마서 어딘가에 <그래서 아바 아버지라 일컽느니라>를 삼대가 亡할 <기독교개혁장로회 교주 노광공>과 공범 조까든 영원히 썩어질 캐새끼들이 막말로 아무런 근거도 없는 그 구절을 따와서리~~~(아바 아버지 즉, 아버지의 아버지는 할아버지, 즉 二來 할아버지교)라고 ~~~안과 밖 세간에서 상호 칭했다.

그래서 그 후 누구든지 <수메르 역사책>을 복사하거나 그대로 베끼거나 도용하여 지네들 역사라고 우기거나 제멋대로 조작하여 펴낸, 썩어질 책자 성경을 빙자하거나, 지가 편한 목적으로 사용하려고 인용해서 나불거리는 작자는~~~무조건 詛呪하거나 행동과 말로써 撲殺내버린다.

듣기로~~~그 교단에서 그짓거리 해처먹는 능력(?)밖에 없는 殘黨중에서 교단의 명칭을 두 번인가 개칭(기독교 성경연구횐가? 뭔가 좌우지간 타 종교 종단의 말단으로 들어가서는~~~전국 각 지역과 경주 어딘가에도 있다 카더라만?)해서 현재도 아가리로 타인의 재물을 등쳐먹는 일, 다시 말해서 종교적으로 어리석은 작자들을 등쳐먹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臥薪嘗膽 忍苦의 세월을 겪고 이겨내면서 그러한 宗敎的인 背信感으로 인한 挫折당한 사건도 他山之石의 敎訓일지라. 그러한 종교적인 큰 배신의 아픈 과거와 傷處때문에 ~~~~~

현재의 海印導師 즉 다시 말해서, <瞬間을 永遠처럼>사는 瞬永家 海印導師가 誕生할 수 있었느니라~~~ㅎ~~~

다만, 가정일진대, 결코 염라대왕은 없다. 그렇지만 있다고 가정하여서리~~~

어느 날 海印導師가 염왕에게 재판을 받을 당시, 만약에 염왕 曰 "海印導師 左右之間에 그 정도 최악의 선까지 가면서 결코 좌절하거나 후회하지 않고, 마음을 고쳐잡고나서 명리학문을 깨달아~~~훌륭하거나 현명하거나 또는 어리한 衆生제도의 공을 봐서 다음 생은 좌절하지 않고 좋은 부모 만나서 놀고 먹거나, 아니면 조빠지게 일하면서 정복을 즐기는 제왕과 같은 삶을 줄터이니 국적 불문하고 가시겠는가?"라고 말하면,

海印導師 답변하기를~~~"염라대왕이시여~~~衆生의 삶은 징그럽소이다. 그저 당신 수하에서 저승사자나 하도록 해주시오. 공명정대하게 그 직책을 수행하리다. 帝王의 삶? 不좌절? 행복한 삶? 그따위는 이미 대왕이나 海印導師나 그 境地를 넘었지 않겠소이까?"라고 答辯할 터이다. ~~~ㅎ~~~

海印導師.
海印 18-05-18 06:12
답변  
불국초등 출신자 동기 중에서 kj3021 <김순열>이라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당시 그 사이비 기독교회에서 끝장(?)을 본, 실로 징그러울 정도로 偉大(이래 살아도 한 세상, 저래 살아도 한 세상인데, 어차피 시작한 그것으로 끝장을 보겠다?)한 친구다.

즉, 그 사이비 기독교 東方敎에서 미래를 내다보고나서는 인재를 키우기 위한 차출 대상으로 뽑혔단다. 그래서 간호원 직업을 가진 또 다른 그 교회 신자인 어떤 여성(함께 생활하는 젊은 남녀이니까는 정이 들어서 그 사이에 딸까지 한 명 낳았다고 말한다)과 함께 독일 유학을 가서는~~~

독일 현지 택시 운전사 직업을 가지면서(그러니까 교단이 亡하니까는 자금을 대주는 사람이 없었단다) 독일 대학과 대학원에서 소위 공인된 <종교학 박사>와 <종교학 석사>를 따 왔을 당시(1990년 중순경, 서울시 강남구 개포동 모 호프집에서 海印導師와 만났다. 그후 2005년 경 동대문경찰서 민원실장 시절에 찾아온 김순열이를 재차 만났다.)

현재, 경기도나 서울 모처에서 모 종교의 Brain 總師父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推測하지만, 지가 먼저 연락을 안 하니까는 현재 정확한 동향을 잘 모른다.

진짜로 또 한번 김순열이를 만나고 싶다. 그래서 다시 한번 김순열이에게 謝罪(1990년경 첫만남에서 호프집에세 병맥주 열병 정도를 마신후, 그 이야기를 하니까 김순열이는 긍정도 부정도 않고 그냥 웃더라만? 짜아식~)를 하고난후, 털어버리고 싶다. 또한 현재 시점에서 김순열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제시하고 싶다.

다아 쓰잘데없는 짓거리일 뿐인, 초로의 인생에서 그래도 한 점의 기억에 사라지지 않는 근본적으로 나의 잘못은 아니지만, 미안한(어떤 일에 끝장을 보는 장래가 촉망되는 당시 친했던 친구에게 썩어질 교회방향으로 인도한 죄?) 인간관계를 精算하고 싶다는 表現일 뿐이다.~~~흠~~~

海印導師.
     
와이리 18-05-18 09:32
답변  
젊은 시절 아니 어린 시절 한때에 있었던.......... ㅎ
그 당시 東方敎(이래 할배교) 교인들이 몇몇 있었던 걸로 아는데
지금은 모두들 무슨 종교든 종교를 갖고 있는지 모르겠네.

누구나 我信敎가 최고니라~
          
海印 18-05-18 10:35
답변  
몇몇이 아니라~~~

미추왕릉 근처의 그 성전(?)이 꽉찰 정도로 아마도 100여명을 넘을 정도로 경주 인근의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 교인이 많이 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조차 그 캐새끼 전도사와 목사들은 인용해처먹었다. 즉, 이 성전이 가짜 같으면 이렇게 젊은 사람일 많이 모여들리 없다. 진짜 하나님이 항주하시는 동방교를 믿어라>고 말이다.~~~썩어질~~~ㅋㅎㅎ~~~

海印導師.
               
와이리 18-05-18 10:42
답변  
욕봤수~ 그러나 한때의 추억.... 좋으나 싫으나 간에~  ㅎ
海印 18-05-18 10:46
답변  
어차피 내밷은 김에 한마디 더 한다.

海印導師는 세간 속칭 東邦敎에 종교적으로 속아서 돈을 바치고 노동력을 바치고 한창 공부할 나이에 헛짓거리(학교 공납금을 교회 周회비로 바친 일 등)를 한 과거는 있어도,

공명정대한 사람이다. 타인의 말만 듣고 옮길줄만 알고 확인도 안해보는 어리석은 타인들이 내밷는 嘲笑하는 행위를 한 적이 결코 없다. 그래서 종교적인 관점이 미숙하여 타인에게 현혹당한 과오에 대해서 한 점의 부끄럼이 없다. 原罪人(囚)은 1967년도 여름에 癌(피골이 상접하여 뒈졌다는 설교?로 눈치챘다)으로 뒈진 노광공이다.

즉, 내가 스스로 부끄럼이 전혀 없기 때문에 자신있게 타인에게 말할 수 있다. kj3021동기생 중, 모 인사는 동방교 말 꺼내는 것 조차 부끄럽게(?) 판단하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몰라도?~~~우리 無門同志會 모임조차 거부한다. 개인적으로는 만나서 술 한잔 나누는 것은 크게 환영하면서 말씀이다.~~~ㅎ~~~

그래서 내가 그들에게 말한다. 즉, <인생 별 것 없다. 풀어라. 풀고 또 풀다보면 인생 전체가 술술 잘 풀리게 되어있다>고~~~ 그러다가 <복수할 기회가 있으면 悽絶하게 復讐하면 된다>고 말씀이다.

그렇지만, 동방교 관련 사건은 海印導師 경주중학교 시절의 아픈 과거다. 타인의 아픈 상처는 안건드리는 것이 上手다. 그래서 얼마 전에 묘청이 왔을때 <가기 싫었지만>서도, 우째 운전대를 잡고 가리키는 대로 가다보니까는, 졸업 후 약 49년만에 처음 경주중학모교를 방문했다.

즉, 향후 타인의 아픈 상처를 일부러 고의적으로 건드리지 말라. 그대와 그대와 자손이 同一한 害惡을 當하지 않으려면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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