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印寺는 큰 절이다.
그래서 天方地軸 하는 인간이 오로지 욕망만으로써는 함부로 도용할 수 없다.
살고 죽은 것은 한 끗발 차이인 경우를 활용할 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아무나 명확하게 잘 모른다.
합천 해인사와 해인 동양 철학원은 상표등록법 상에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진작에 海印導師는 海印이란 명칭을 사용하려고, 지역적으로 이미 을유년(2005년 초) 합천 해인사 근처 율곡면에 선산 2만 9천 평을 구매하고 나서, 조부님 조모님 부친 모친 유골을 모신 바 있다. 물론 합천 해인사에도 진작 밤새워 가면서 부부가 함께 작정하고 거대한 徹夜 佛供을 올린 바 있다.
또한 1992년경에 실시하는 팔만대장경 금속판 주조사업에도 한 구좌 <일백만 원>을 성의껏 불사하였다. 海印導師의 소개로 kj 3021 동기생 중에는 한모 사장도 동참했다. 그래서 팔만대장경 진본 반야심경 원판을 현재 海印東洋哲學院 법당에 모시고 있다. 그리고 법당 밖에는 <小海印精舍>라는 글씨도 인쇄하여 게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어느 날 갑자기 海印導師란 필명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요, 이미 故 천 년 전부터 계획적으로, 아니면 因緣 法則에 따라서 인연을 맺어왔더란 이야기다.
그 주요한 원인은 이렇다.
즉, 海印이란 말은 사실 엄청난 道力과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만 중생을 제도한다는 진실한 마음 없이 함부로 사용하면, 개인적인 수명을 減할 수도 있는 <危險負擔>을 진다는 말이다. 그러한 부담은? 海印導師가 生死 問題에 대해서 깊이 방황하던 20代 初에 깨달은 <生死一如> 觀念의 達通으로 相計한 바 있다.
잘 아시겠습니까? 이 세상 모든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란 말씀이다. 막말로~~~ㅎ~~~
해인동양철학원 운영도 계해년(1983년도)부터 인연을 맺어 왔었고, 당시 海印導師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개업 시기를 좀 늦추었을(약 31년) 따름이었다.
사실, 海印導師가 경찰관 신분으로 재직할 도봉산 산악구조대장 직책으로 발령 났을 당시부터, 약 7여 년에 걸쳐서 해인동양철학원 운영에 필요한 모든 문서를 파일화하였고, 국가경찰공무원 퇴직 전, 약 7여 년에 걸쳐서 준비작업을 거쳤다는 말씀이다. 물론 친구인 컴퓨터 프로그램 관련 서악 교수의 많은 도움도 받았다.
괜스레 쓸데없는 소릴 변명 아닌 설명으로 너무 많이 기록해 버렸다.~~~흠~~~그만 쓰자.
海印導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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