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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9-10 08:26
보닝턴 관련 9월9일자 한겨레 記事...........
 글쓴이 : 와이리
조회 : 373  

어제 들과 왔던 그 글이 클릭이 되지 않아서
한겨레 신문을 뒤져서 찾아 왔수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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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닝턴 “내게 등산의 기쁨이란 정상에 올랐을 때 뿐 아니라 정상까지 가는 그 길”


84살이라곤 믿을 수 없었다. 어깨, 허리 어디 하나 굽은 곳 없이 반듯한 자세, 윤기가 반짝이는 눈. 전세계 산악인들에게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불리는 크리스 보닝턴(84)이 한국을 찾았다. 울주세계산악문화제(7~11일)가 시상하는 울주세계산악문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그는 영화제 개막일인 7일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산에 대한 철학과 수상의 기쁨을 전했다.

1934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그는 1951년 17살 때 웨일즈·스코틀랜드의 산을 등반한 이후 안나푸르나 2봉, 눕체, 파타고니아 파이네 중앙 타워, 에베레스트 남서벽, 파키스탄 카라코람 오거 등을 처음으로 올랐으며,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책을 썼다. “영국의 산악 서적은 두가지로 나뉜다. 크리스 보닝턴이 쓴 책과 크리스 보닝턴이 언급된 책으로”(작가 심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는 등반가이자 작가로서 열정적인 삶을 살아왔다. 1996년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기도 했다.

이날 이선호 영화제 이사장(울주군수)으로부터 ‘영남알프스’(울산·밀양·양산·경주·청도 등에 걸쳐 태백산맥 남쪽 끝자락에 있는 해발 1000m 이상의 산악군) 전경이 담긴 액자를 선물받은 그는 답례로 젊은 시절 이탈리아 돌로미티를 오를 때 사용했던 해머를 영화제 쪽에 전달했다. 이 해머는 보닝턴의 60년 등반 인생의 산증인이라는 의미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트렌토 산악영화제(올해 66회)가 열리는 돌로미티와 관련있는 장비라는 점에서, 이제 세돌을 맞은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도 지닌다.

“당신에게 산은 무슨 의미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접한 보닝턴은 “내게 산이란 마음 깊이 열정을 갖고 사랑하는 존재”라고 답했다.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크리스 보닝턴-산악인>에서 “덜 위험하거나 덜 어려운 일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던 그는 이날도 “나는 누구도 올라가지 못한 산을 보면, 어딘가엔 반드시 올라갈 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보닝턴은 자신이 남다른 투지와 열정을 갖게 된 이유로 어릴 적 겪은 지독한 외로움, 정서적 불안을 꼽은 바 있다. 아버지가 가족을 저버린 탓에 그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야 했다. 싱글맘이 드물었던 1930년대, 소년 보닝턴은 세상의 편견 어린 시선이 닿지 않는 거칠고 황량한 자연에 이끌렸다.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군인의 길을 가려고 했으나, 또는 평범한 회사원(유니레버)으로 살려고 했으나 결국은 산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보닝턴은 가장 어려웠던 산행 중 하나로 1977년 파키스탄 카람코람 오거에 올랐던 때를 회상했다. “정상에 오를 때는 매우 순조로웠으나 하산길이 정말 힘들었다. 동료 더그 스콧은 (낭떠러지로 추락해) 두 다리가 다 부러져 기어와야 했고, 나는 갈비뼈 석대가 부러졌으며 5일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우리 둘 다 살아 돌아 왔다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는 수십년 동안 산을 오르면서 스스로 바뀌었다고 했다. “한창 기운이 넘쳤을 때, 즉 40살이전까지만 해도 나는 매우 경쟁적이었고 야심이 있었기 때문에 계속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여유와 포용력이 생겼다. ”

“70대에 접어들어 몸에 한계가 오면서 산에 오르는 육체적인 즐거움을 잃게 됐다”고 했지만 그는 80살을 맞은 지난 2014년 스코틀랜드 오크니섬의 30m 사암 기둥 ‘올드맨 오브 호이’ 등반에 도전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올드맨 오브 호이는 그가 32살이었던 1966년 올랐던 곳으로, 영국의 한 방송사는 그가 이 암벽에 오르는 1박2일간의 등정을 촬영해 중계했다. ‘마치 달에 착륙하는 우주인을 지켜보는 것처럼’ 이틀 동안 700만명이 시청하는 진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아무도 오르지 못한 정상을 밟는 데 그 오랜 시간을 쏟아부었음에도, 그는 “정복이란 말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산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갖고 오르다보면 어떨 때는 정상에도 오르게 되지만 그것은 우연일 뿐이다. 내게 등산의 기쁨이란 정상에 올랐을 때뿐 아니라 정상까지 가는 그 길이었다. ”

사랑하는 가족을 놔두고 어떻게 그 위험한 직업을 계속해왔냐는 질문을 받자 그는 “많은 모험가들이 그런 질문에 직면하지만 제대로 답할 수 없는 문제”라며 “클라이밍이나 모험에 대한 사랑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양복쟁이와는 평생을 살 수 없다”며 수십년 동안 자신을 지지해준 아내 웬디가 세상을 뜬 뒤, 역시 산악인 남편과 사별한 로레토라는 여성과 2016년 결혼해 ‘산’과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

울주/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海印 18-09-10 09:27
답변  
영국인인데, 혈통이 몽골리안 피가 섞인 것 같이 보인다.

左右之間에 끝까지 강건하게 오래 사는 넘이 最强者다.

돈도 안되고, 남편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감에 속을 끓이면서 살던 전 아내 웬디는 진작에 저자를 버렸어야만, 강건하고 편한 長壽를 할 수 있었을 것 같다.~~~ㅋ~~~

하여간 대단한 산악인이네. 대단타. 자신의 일과 목적에 전력투구하여온 그의 일생은 과히 칭찬받을만 하다.

그렇다고해서리, 이 나이에 海印導師는 안 가본, 네팔 에베레스트 등 오지를 가보거나(산 아래까지 가설랑 퍼지고 않아서리 요리 조리 자연을 구경할 생각은 많다~~ㅎ~~)오를 생각 전혀 없다라고라~~~으하하하~~~

海印導師.
沼岩 18-09-10 20:34
답변  
그래 맞다.
서울 지인이 보닝턴도 만나고, 사진도 찍고 하더니...
이분이구나.
     
와이리 18-09-10 21:22
답변  
찾아 가서
인증샷도 한방 박고........ 게시판에 올려 보시라~
울산 3021 산악인들은 당연히 가시겠네..... 샷~ 올려라!!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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