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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1-12 07:05
대학자 김주신의 견해
 글쓴이 : 海印
조회 : 592  

먼저 김주신의 약력부터 올린다. 실제로 海印導師가 한창 풍수지리 간산공부에 열심일때, 당소가 이준기 선생님과 함께 답사한 적이 있는 곳이다.

김주신 (金柱臣 1661∼1721(현종 2∼경종 ...)


조선 중기 문신. 자는 하경, 호는 수곡·세심재. 본관은 경주. 숙종의 장인, 박세당의 문인이다.
조선 중기 문신. 자는 하경(廈卿), 호는 수곡(壽谷)·세심재(洗心齋). 본관은 경주(慶州). 숙종의 장인, 박세당(朴世堂)의 문인이다. 1686년(숙종 12) 생원에 장원, 1697년 장원서별검(掌苑署別檢)이 되었으며, 순안 현령 때에는 명판으로 이름이 높았다. 1702년에 그의 딸이 숙종의 계비(繼妃;仁元王后)가 되자,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를 역임하고 경은부원군(慶恩府院君)에 추봉되었다. 오위도총부 도총관으로서 상의원(尙衣院)·장악원(掌樂院)의 제조(提調) 및 호위대장(扈衛大將) 등을 겸임하였다. 당대의 문사 최석정(崔錫鼎)·김창협(金昌協)·서종태(徐宗泰)들과 가까웠다. 숙종이 승하하자 슬퍼한 끝에 병들어 사망하였다. 저서로 《거가기문(居家紀門)》 《산언(散言)》 등이 있다.

오늘 지하에서 조용하게 말없이 쉬고 계시는 그를 불러 왔는가? 같은 金氏인 연고로? 아니다. 그 이유는 이렇다.

즉, 조선조 널리 퍼진 <明堂發福論>의 폐혜를 적나라하게 지적하여 우매한 민중을 일깨우신 기록에 남는 딱 한 분이기 때문이다.

시간상, 핵심만 전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즉, 죽은 인간의 말라 비틀어진 유골이 후손에게 영향을 끼친다? 아니 그래, 산 사람도 자신의 자식을 공부시키고, 훈육시키고, 무술수련하게 하고, 장가 보내고, 재산을 증여하고, 등등 해도 자식에게 직접 영향을 끼치기 어려운데? 그 무슨 미친 쓸데없는 소릴 해제끼고 있는가? 소위 글도 쓸 줄 모르는 무지랭이도 아니고 사리분별이 분명하다는 대학자들이 말씀이다.~~~ㅎㅎㅎ~~~끝.

오늘은 일 때문에 일찍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 쓴다. 오늘 아침 일찍부터 예약자가 많이 오신다.

海印導師.

사진은 실제 간산한 김주신의 묘다. 당사자는 그렇게 말을 했을지라도 후손은 그의 묘를 적절한 곳에 대충 잘 모셨더라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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