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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9-16 22:55
박정희대통령 묘역에 박혀 있는 쇠말뚝.......
 글쓴이 : 와이리
조회 : 182  

박정희대통령 묘역에 박혀 있었던.. 있는 쇠말뚝의 갯수가
4700개 3500개 2500개 1700개 1600개 등 숫자에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쇠말뚝이 박혀 있었던 건 사실이다.

아래 유튜브를
다 보시든가.. 골라서 보시든가.. 한꺼번에 보시든가.. 틈틈히 보시든가
알아서 하시고....... 관심있는 분은 보세요~


박정희 묘소 '쇠말뚝' 8년간 1600개! 누가, 왜? 충격적 진실 드러났다 (진성호의 직설) -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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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印 19-09-17 05:51
답변  
위 관련 유투브 동영상(맨위와 김문수 지사 나오는 것)을 보니까는 고정용 걸쇠 쇠말뚝을 고 박정희 무덤 주위와 봉분에 박은 것은 사실임을 확인했다.

문제는 정서적인 문제일 뿐이지, 풍수지리학 모 박사의 말(땅에도 혈이 있다? 인체의 침을 박듯이 해롭다는 등)은 헛소리 캐잡소리일 뿐이고, 풍수지리는 물상의 법칙이 적용한다.

현충원측에서 잔듸고정용 쇠말뚝을 2011년(이명박 통령재직시절임)에 박았다고 궁색한 변명 아닌 해명을 했지만, 이해가 잘 안되는 변명으로 들린다.

다만, 개인적인 풍수지리학문적인 판단을 싣는다.

즉, 잔듸고정용 핀은 1,600개가 아니라 열배인 16,000개를 박아도 전혀 풍수지리상의 효과(?)는 없다.

다만, 두 봉분(박대통령내외분)의 바닥이 석조물로 되어있고, 무덤도 석조물로 둘러서, 강우시 위에서 내린 빗물이 잘 빠지지 않고 고여서 유골은 수침되어 시커멓게 변해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옛날부터 이러한 사실을 좀 아는 부호들은 절대로 석관을 사용하지 않고, 왕릉이 아닌 이상 무덤 주위에 둘레석을 사용하는 것을 금기시해왔다.

갠적인 결론: 잔듸 고정용 쇠말뚝이 문제가 아니라~~~~석판과 석관조성으로 물구덩이로 만든 묘소 관리방식의 큰 문제로 판단될 뿐이라고 말한다. ~~~흠~~~

海印導師.  씀.
海印 19-09-17 05:59
답변  
내가 이곳에 海印東洋哲學院을 開院한 지, 약 육년이 지나고 있다.

그동안 풍수지리 손님은 겨우 5명 중, 양택 세건이요, 음택 관련 손님은 2명 뿐이었다.

그야말로, 음택 관련 벌이는 크지만 (물론 한 건당 수수료 금액은 크다. 그렇지만, 그 돈으로는 관리비=매달 약 30만원) 일년 관리비도 충당하지 못한다. 소위, 풍수쟁이만 하면 기냥 빌어처먹을 수준이다. 한 건 해서, 일년 건물 관리비를 충당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래서, 음택 관련 풍수지리는 직업으로 삼을 수 없다.

그 중에 충북 모 처의 유력가문의 부모님 산소를 이장해준 적이 있다. 당시 그곳은 석조물 조성과 석관에 모신 무덤을 파 헤친 업무가 있었다. 그 당시 그 유체는 물에 화상을 입어서 무덤을 조성한지 약 10여년이 지났어도, 유체를 매장할 당시에 묻은 수의와 휘장 등이 썩지 않고 시신만 유탈된 채, 시커멓게 변해있는 유골을 수습하여, 그 유력자의 다른 산의 청룡국 길지 명당을 선정하여 장사를 잘 지내준 일이 있다. 당시 위탁자로부터 상당한 댓가를 지불받았다.

그래서, 위 박정희의 묘소 주변 정리를 잘못한 방식이라고, 개인적인 경험을 비교 추론해서 叱咤할 뿐이었다. 모든 것은 다 망자와 관련 생자의 福不福일 뿐이다.~~~흠~~~

海印導師.  씀.
海印 19-09-17 06:08
답변  
당시, 그 유력자는 죽지 않으려고, 어찌어찌 海印東洋哲學院을 찾게 되었다. 그는 약 일 년 동안, 악몽에 시달렸다고 진술하더라만~~~흠~~~

그는 어쩌다가 나와 인연이 되었다. 즉, 인천에 사는 그의 딸이 海印導師의 손님으로 와서, 크게 벌린 남편의 사업년도와 채무불감당으로 해외도주한 년도를 정확하게 짚어내자, 이에 놀란 여성 고객이 된 인연이 연결되어서 나중에 그의 아비까지 소개받아서 알게 되었다.

海印導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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