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의 필자가 거의 정해져 있어,
제가 최근에 페이스북에 올린 글들을 한꺼 번에 올려 봅니다.
사진은 시간상 생략//
ㅇ.한 조직에서만 30년 근무한 후, 그 뒤 9년은 중소기업이지만 거의 2년마다 의도적으로 직장을 옮겨 다양한 사회 현상을 배우는 과제로 새로운 변화에 적응해 가는 중이며,
- 사회 현상 공부과제 중 전국의 명품도시 찾는 것도 그 중에 하나인데, 과거 9년 중 와이프가 살아 있을 땐같이 주로 전라도 지방의 명품 마을은 거의 모두를 다니면서 바쁘지만 여유가 있었는데, 사망 후 4년간은 한가해도 여유가 없는 삭막함을 느끼면서 다닌다고나 할까, 그래도 전국의 산하 구석구석을 섬을 제외하곤 서너번씩 반복적으로 다니면서 창조와 변화의 현장 속에 전국의 속살을 주유하기 보다는 탐사에 치중 체득하면서하며 과제를 풀어 오고 있다.-결과론 이지만, 3년 전에 문체부 선정 관광 명소 100선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호남의 14곳은 거의 섭렵하고, 고향인 경상도가 마니 빠져 있어 작정하고 충북 괴산, 경상도 4곳 등 이번에 다녀 오게 되었다.
( 작년 년말에 다녀 온 관광명소 100선에 포함되어 있는 강진의 가우도, 해남의 땅끝 절인 미황사는 바람과 추위로 제대로 느끼질 못해서, 다시 4일정도 힐링탐사를 해 볼 작정이다)
ㅇ.이제 문체부 선정 관광명소 100선 중 각 道에 한 곳 정도(총10 곳) 남아 있어, 카운트다운 들어 가니 내년에는 100선 탐방은 마무리 지을 것 같다//
< 74주년 8.15 광복절 단상 >
오늘 광복절을 맞이해, 아우가 독립유공자 후손 대표 중 1인으로 보신각 타종 행사에 참여하게 되어, 사진 기사로 참여했다.
20세 이전에 의병활동하다 20세에 한일합방이 되어, 신변의 위협을 느껴 압록강을 넘으면서 쓴 할아버지의 漢詩(어제 밤에는 잠을 한숨도 못 잤다. 압록강 물소리가 시끄러워서가 아니라, 나라를 걱정하니... 등의 )를 생각하면 후손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우리 3형제가 행사(청와대 오찬, 3.1절 타종, 8.15타종)에 참여하게 된 것은 그래도 드문 케이스라 생각된다. 동참은 안하지만, 평생 사회를 걱정하는 마음은 있으니, 그런 피는 있다고 자위해 본다.
-아울러 제 지인으로, 한 시대에 나라를 걱정해 온 아래의 사진 분들 생각하면, 정말 몸 둘 바를
모를 뿐이다.
1)오소(주) 권정민 대표는, 동해가 한동안 JAPANESE SEA에 밀려 있다고 판단, 사명감으로 동해/ 독도/연해주 알리기 홍보를 하여, 지금은 구글에 EAST SEA를 치면, " EAST SEA OF KOREA "가 상단 서너번 순위에 나와 홍보전에서 일본을 능가하고 있다.권 대표는 이제 동해 바다 알리기가 우위를 점했기에, 외교통상부가 홍보업무를 가져 가도록 요구했으나, 외통부 답이 예산과 담당자가 없다고 가져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개탄
2)김영식 대표는, 휴전선 철책에 전광판을 설치, 북한 땅 25키로 내에서도 합참의 홍보 문구를 보고, 주민 및 군인들이 동요하도록 경호원의 호위를 받으며 생사를 넘나 들며 평생 업으로 해 왔으나 DJ정부에서도 지원해 준 관리 비용을 후임 정권부터는 중단되어, 50억원의 비용 청구 소송을 낸 상태지만, 통일되면 지급하겠다는 헛소리만 한다고 하소연
3)강 군열 목사는 ,공동경비구역 JSA 교회에서 목회 활동 2013년까지 운영하고 해 온 강 목사 역시 한 시대에 생과 사를 넘나 들며, 북한 땅에 복음을 간접 전파했고, 지금은 우국충정의 마음으로 구국동지 활동을 활발히
< 고구려 유적지. 백두산 탐사 단상 >
1.정확히 10년만에 백두산 천지도 그리운 산하고,고구려 유적지도 둘러 보고 싶어 다녀 왔다.
-압록강 단교- 압록강 단교 옆 중조우의교 위 북한...묘향산여행사 관광객 수송 차량 -오녀산 산성(우리의 이름 졸본산 산성)-호산산성(만리장성 동단기점) 너머 위화도- 백두산 천지외- 국내성성터-묘향산 식당(평양)- 장군총외
2. 장수왕 장군총/ 광개토태왕릉1)자료에 의하면) 우리민족은 3과7 숫자를 좋아한다. 3과7은 우리역사의 신앙과 관련이 있다..고조선 후예인 고구려 무덤인 장군총은 3단7층(각 단 7층) 구조로 되어 있다.천지인 3위 일체 모두 3의 이치다. 또한 7은 고조선 이전 환웅배달시대 (공공족) 때부터 이어져 온 칠성신앙과 연관이 있다. 단군역사에는 웅녀가 환웅이 준 마늘을 먹고 21일을 수련하여 사람이 되었다 한다. 고구려 장군총도 3단씩 7층 (각 변은 32미터 길이 , 높이 12미터)으로 21을 의미하여 죽어서도 북극성 인 본래 자리로 돌아 간다고 믿는다.(펌글)
-장군총은 여전히 더 심하게 이끼가 끼어 있고, 각 면에 護墳石 3개씩 기대어 세웠지만, 북 면에는 1개가 없는 채로 방치되고 있다.
2)광개토 태황릉 주변 정리는 켜녕 내팽개쳐 진 상태로, 릉 주변의 돌은 이끼로 섞어 갈 정도로 방치되고 있음이 울화통이 터진다.
우리는 고구려의 전성시대를 지켜 준 부자의 무덤이고 우리의 자존심인 현장을 구걸해서라도 지켜 주도록 요구하고, 중국이 아무리 역사를 조작하드라도 피라미드를 우리가 창조하였고, 피라미드 형태인 장군총 (3단7층 의 신앙)을 방치해선 안 된다고 본다.또한, 장수왕은 고구려기 가장 전성기라 서진하던 시기임에, 서쪽으로 영토를 넓히던 고구려가 왜 궁벽한 한반도 평양으로 후퇴할 이유가 없었고, 고구려의 평양이 현 만주 요양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펌 글) 북위시대(386-534년) 당나라 때 지은 <통전>에 “북위시대에 고구려가 요서의 평주에 도읍했다”는 기록도 있다 하니, 이 또한 역사 방치의 소산임을 자각하고, “무식한 게 용감한 게 아니라” 모두가 깨우쳐야 할 때라고 본다. (고구려 수도 평양 천도 장수왕 15년(서기427년),서진 시기에 평양남진은 날조? 설 )
결어)10년 전보다 우리의 역사는 여전히 더 심하게 날조 방치되어 있지만, 동북3성이 마치 자연공원을 방불케 할 정도로 정리정돈 되어 있으며, 도로 주변의 가옥의 경관/도로변 정리/ 가로수/야경 경관이 자연공원화 되어 있다고 느낌,
아울러 배달 민족의 자존심인 고구려에 대한 중국 역사 날조에 대응하고, 너무나 늦었지만 웅비한 민족기상 회복 운동화해야 한다고 본다 // 하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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