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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3-08 07:26
●신흥종교 발흥 이유●
 글쓴이 : 海印
조회 : 674  

근대 미국의 경제를 노예경제 관점에서, 이를 노예경제 학문으로 발표하여 설파한 Stanly Engerman氏가 말했듯이, {한반도 종족은 수천 년 동안 同族을 奴隸로 삼아온 이상한 노예근성 종족 (특히 고려말 만주 군벌 李子春 소생 이성계가 창건한 조선국 약 500년 통치 기간 중, 가장 동족의 노예 취급이 극심하였다)라고, 학문상 설파하고 있다.}

한반도인은 부끄럽게도 동족을 노예나 착취대상으로 삼은 이상한 민족이며, 그래서 한반도 이 땅에서 국가를 빼앗긴 일제 강점기에 민족성을 잃어버린 민족성과 자존감 상실로 인하여 태동하기 시작한 신흥종교와 미친 사이비 종교가 발흥하는 근본적인 원인제공을 하였다는 관점에서 추론하여 기록해본다.

​즉, 첫 출발 당시의 웅대한 뜻은 구한말 경, 민중의 압살당하고 피폐한 천하 중생의 인권을 쟁취하고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라는 만민평등사상을 구현하고자 함이었다. 그렇지만, 당시 <侍天主> 사상은 경천동지할 혹세무민성 발언으로 낙인찍혔다. 왜냐하면, 2대교주 최시형은 시천주를 "事人如天"으로 발전시키고 3대교주 손병희는 "人乃天"으로 발전시켰다. 즉, 사람과 하늘이 같을진대, 왕조의 지배와 통치이념의 정통성을 폄훼하는 이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조사회의 이념적 붕괴를 우려한 왕실의 막강한 권력에 의하여 탄압이 시작되었다. 즉, <시천주> 사상의 주창자가 혹세무민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사형당하자, 수운 최제우의 원대한 사상과 뜻은 당시 재빨리 좌절하여 버렸다.

​중략~~~

다시 말하자면,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韓半島의 그 유명한 <惑世誣民>의 泰斗로 지목할 위인은 바로, 대구시 소재 달성공원에서 惑世誣民한 大逆罪로 날아간 목이 장대에 높이 걸려서 천하의 인민에게 조롱당한 先覺者 최수운 先生에서 시작한다. 그다음은 앞서 말한 바 있는 구한말 근세조선이 망하기 전, 自殺로 생을 마감한 강일순으로 이어진다. {참고: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 : 1824~1864)ㆍ모악산(母岳山)의 증산 강일순(甑山 姜一淳 : 1871~1909)}

그 후, 미국과의 양대 체제전쟁에서 동남아 국가를 전부 자국의 위성 공산국가로 만들려는 소련 지도자 스탈린의 使嗾(사주)와 이를 한반도 집권의 기회로 이용한 김성주(김일성)에 의하여 발발한 6.25사변으로 세계의 죄 없는 천하 중생이 수백만 명 비참하게 죽어 나가고(외국의 사례를 한반도 좁은 지역에 사는 중생이 죄없이 수백만 내지 수천만 명이 죽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하루아침에 친척이 흩어지고 재산이 없어지는 등의 불교의 효능{고려 시대 팔만대장경판 제작으로 軍事的 강국인 몽골에 대항한 수동적인 대응전략 등이 전부요, 그야말로 인근 국가의 인간과 땅과 보물과 재산을 빼앗기 위한 적극적인 물자나 인명 탈취전쟁이 거의 없었다. 물론 몽골국의 대대적인 침략 전쟁 후, 몽골과의 전쟁을 겪은 강골 武人(수령 김통정 등)들이 "삼별초의 난"을 일으켜서 여★몽연합군에 끝까지 저항했지만 결국 패배하였다.}을 천하의 중생이 의심하게 되자, 그 틈을 비집고 전쟁 통에 들어온 선교사를 앞세운 기독교가 이 땅에 활개를 치면서 산업화에 발맞추어 勃興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당시 접한 기독교 교리와 민중에 펴져 있던 선각자 최수운의 가르침과 선각자 강증산의 교리를 섞어서, 천하의 어리석은 중생을 착취하는 수법으로 교묘하게(실제는 냉정하게 분석하면, 황당하고 유치한 수준의 설교일 뿐이다) 妖邪한 敎理를 뒤섞은 다음, 천하 중생의 재산과 정조와 용역을 가로채는 수법으로 소위 <惑世誣民>해온 것이 바로, 한반도 특유의 신흥종교와 사이비 종교를 만들어 천하 중생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쳐 온 사이비 종교의 開創者와 그 追從者가 天罰을 받아 마땅할 罪業으로 활개를 친, 이 땅에서 일어나는 역사적인 현장의 참모습이다.

물론, 유사 이래로 인간의 想像力이 오늘날의 위대한 과학발전을 가져오게 되었고,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생명체 유전자 조작에 이를 수 있는 赫赫한 功을 세우는 端初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상상력의 방향이 소위 佛家에서 말하는 <正法과 八正道>를 벗어나는 방향으로 핸들을 조정할 경우, 시도하는 당사자는 물론 그의 자손까지도 火急하게 敗亡의 쓰라린 맛을 보게 됨을 <調和와 均衡>을 이루어 나가면서 <諸行無常>인 위대한 어머님 地球와 위대한 아버님 太陽이 존속하는 그날까지 변함없이 적용되리라 판단한다. 또한, 현재와 미래사회에서 讖言이나 감언이설로 타인의 재산과 용역과 정조를 착취하려는 사이비 종교인과 유사한 망할 쓰레기같은 종자의 황당한 거짓말을 냉정하게 배척하는 냉정한 판단력과 정신력을 배양하라는 念願을 담아서 이렇게 기록한다. 끝.

海印導師. 合掌.


海印導師 20-03-09 06:28
답변 삭제  
나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우익계열 조계종 스님 이법철님의 글을 옮겨 적는다.

以下 관심있는 사람은 읽고 아니면 말면 된다.~~~ㅎ~~~

즉,

{人生無常論===>인간은 언제 죽을 지 알 수 없는 무력한 존재이지만~~~모든 인간이 피할 수 없이 닥치는 죽음에는 노소(老少)의 차례가 없다. 예컨대 태어나자마자 죽는 인생이 있고, 소년 소녀 때 죽고, 청년기에 죽고, 장년기에 죽고, 노년기에 죽기도 한다. 죽음을 맞이하는 시간은 인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은 희소하다. 심장마비나 교통사고나, 불시에 타인에게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우연히 황당하게 사고사(事故死)로 죽게도 된다. 부처 죽음이라는 말이 전해온다. 열반의 순간,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라 말하고, 그에 답변과 유촉의 법문을 하고난 후, 죽는 부처님 같은 열반을 하라는 뜻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을 살면서 대다수가 조물주(원천적 동종개체 번식력) 번식을 바라면서, 성교에서 얻는 쾌락을 즐기도록 육신에 심어둔 DNA 탓에 보통 인간들은 성의 쾌락과 번식욕에 의해 남녀간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벌다가 거의 졸지(猝地)에 작별의 유언 한마디 못하고 죽어가는 것이 중생이다.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 가비라국의 왕자로 태어났을 때, 히말라야 산에서 수행하던 아시타 선인(仙人)은 왕의 부탁에 의해 실달다 아기 왕자의 관상을 보고는, 아시타 선인은 먼저 슬프게 울었다고 전한다. 그 이유인즉, 이상하게 표정을 짓는 정반왕에게 아시타 선인은 이렇게 말했다. “왕자님은 장차 진리를 완전히 깨달은 부처님이 되실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부처님을 뵙고 가르침을 듣지 못하고 먼저 죽고 마는 운명이라 안타까워 슬피 우는 것입니다.” 아시타 선인의 말을 분석하면, 싣달타 왕자는 태어나면서 <장차 부처님으로 될 운명>이었다고 논평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적인 분석을 한다면, 고타마 싯다르타 왕자의 생모인 마야부인은 당시 인도 풍습대로 친정집에 아이를 낳기 위해 남편이 있는 가비라국에서 길을 떠났다가 녹야원(鹿野苑)이라는 동산에서 출산기를 느끼고 시녀들이 임시 천막을 친 그곳에서 왕자를 낳고, 난산(難産)의 고통 속에 출산 후 고통 속에 신음하다가 일주일 만에 죽고 말았다고 전한다. 마야부인은 죽음을 도저히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잠든 아기를 꼬옥 껴안고 슬퍼하는 얼굴로 죽어갔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모자지간(母子之間)의 이러한 애통한 인연이 또 있을까? 싯다르타 왕자의 아버지인 정반왕은 아기에게는 생모의 죽음을 숨기고, 이모를 계비(繼妃)로 맞아들여 왕자를 生母같이 키우게 했다. 정반왕은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가 부처님 보다는 성장하여 인도를 통일하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랐고, 그래서 왕의 학문을 가르쳤다.

그러나 고타마 싯다르타 왕자는 나이가 10세 때, 우연히 생모가 이미 죽었다는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 때부터 왕자의 화두는 “내 어머니는 어디로 가셨을까?”였다. 마침내 태자는 죽음이 없는 진리를 깨닫기 위해 왕자의 지위를 헌신짝 버리듯 하고, 雪山의 修行者가 되었다. 아버지는 떠나간 아들을 애통하게 생각하여 다섯 명의 경호원을 선발하여 수행하는 부처님의 측근에서 경호하게 했으니, 그 사람들이 훗날 부처님의 제자인 5비구이다. 五比丘(오비구)는 수행자의 복색으로서 죽을 때까지 경호하고 아라한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전한다.

부처님께서 진리를 깨달은 후 선정(禪定)에 들어 그토록 보고 싶은 어머니를 찾아보니 항하사(恒河沙)와 같은 우주의 별 가운데 도리천(忉利天)이라는 곳에 태어나 살고 계시다는 것을 통찰하고, 마침내 어머니를 찾아뵈었다고 불경에는 전해온다. 따라서 불교의 <萬古不變의 眞理>는 효사상(孝思想)이라는 것을 闡明하였다. 불교를 신앙하는 사람은 부처님처럼 어머니의 은혜를 절대 잊지 않고 어머니를 위해 살아서나 죽어서나 효도해야 함을 말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축약하여 설명한다면, 첫째, 인연법칙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인연이 있어 생(諸法從緣生)하고, 모든 것은 인연이 다하면 멸(諸法從緣滅)한다고 부처님은 강조하셨다. 이것을 縮約하면, {인연으로 모이고(因緣聚), 인연이 다하면 흩어진다(因緣散)}란 뜻이다. 모든 인간들이 인연법을 통찰하면 불교의 핵심을 깨닫는 것이다.

세상에 수많은 인연 가운데는 나를 有益하게 하는 행운의 인연인 선연(善緣)이 있고, 나를 해롭게 하고 망치는 악연(惡緣)도 있다. 나의 지혜로 통찰하던지, 아니면 부모와 선지식(善知識)의 조언을 받아 악연은 만나지 말아야 하고, 악연은 재빨리 끝내야 한다. 짦은 인생에 지혜롭게 선연을 만나 행운을 얻어도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찰나(刹那)와 같이 짧은데, 왜 악연을 만나 고통속에 살며 죽겠는가? 남녀 간의 사랑도 깨닫고 보면, 선연과 악연이 분명 하게 작용한다. 한국인의 결혼생활에 이혼율이 36%에 이른다는 사실은 善緣이 아니기 때문에 헤어지는 것이다.

둘째, 업보사상(業報思想)이다. 부처님은 全知全能(전지전능)한 唯一神(유일신)이 나를 특별히 구원해주는 것이 아닌, 내가 스스로 지은 자작자수(自作自受)의 인과응보에서 행(幸)과 불행으로 나누어진다고 인과법을 간절하게 가르쳤다. 인과법은 업보사상이다. 모든 인간이 간절히 바라는 인간의 무병장수와 재복과 처복 등 모든 행복도 깨달아 통찰하면 因果應報(인과응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렇다. 전지전능한 유일신이 모든 인간에 대해 개인적으로 행복과 불행을 주는 것이 아닌, 인간 스스로 지은 인과법으로 운명을 결정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인간들은 부처님이 가르치신 업보사상을 절대적으로 믿어 선인선과(善因善果)를 행하고 받는 인생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셋째, 반야사상(般若思想)이다. 인간은 나이가 들어 자신의 지나온 인생을 회고하면 흥망성쇠(興亡盛衰)의 책임이 절대唯一神(유일신)이나 부모, 그리고 국가사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에게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젊은 날 천금과 같이 아까운 시간에 부모의 재산과 개인의 재산을 낭비하고, 勉學(면학)에 힘쓰지 않고, 개와 돼지 등 동물같이 남녀의 성의 쾌락에 인생을 망친 것도 바로 나의 책임인 것이다. 따라서 부처님은 중생의 깨달음을 위해 간절히 말씀하신 진리의 핵심은 般若思想(반야사상)으로 인생을 살라는 것이다. 반야는 智慧(지혜)를 뜻한다. 짧은 인생을 지혜로서 통찰하여 현명하게 살아가라는 것은 속세의 진리이다. 그렇지만 세상을 떠나 부처가 될 수 있는 지혜는 마하반야(摩訶般若)이다. 마하(摩訶)는 최상승의 크다는 뜻이요, 반야는 지혜이니 마하반야는 부처님이 될 수 있는 대지혜를 뜻한다. 晝夜(주야)장창 인생의 목적은 섹스와 부귀영화에 있는 것처럼 집착하고, "남녀의 섹스를 위해서 돈을 악착같이 벌어야 한다"는 지혜는 마하반야가 아니다. 그것은 속세의 유한하고 결국은 허무한 지혜일뿐이다.

그러나 속세의 육신은 업사상에 의해서 태어나면 반드시 죽어야 하는 것(生者必滅)이 불변의 진리이다. 그런데 불변의 진리를 부정하고 유신의 영생과 無盡福樂(무진복락)을 얻으려는 속세의 미혹한 남녀들은 육신의 영생과 일확천금(一攫千金)하라고 혹세무민(惑世誣民) 종교이론으로 천하의 중생을 선동하는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진실로 허무하고 고통과 후회속에 죽어간다. 죽은 순간에 자신이 스스로 빠진 미혹한 망상을 깨닫고나 죽을 수 있을까? 지구상에 육신의 영생을 주장하는 자들은 모두 희대의 사시꾼들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육신의 영생은 절대로 없다는 말이 진리임을 재빨리 인식하는 길이 바로 현명하고 행복한 인생을 사는 唯一無二(유일무이)한 길이다.

끝으로, 서두에서 언급했지만, 모든 인간의 남녀는 자신이 언제, 어느 때, 죽을지를 모르고, 탐욕으로 선업보다는 악업을 자행하면서 악착같이 살다가 하루아침에 허무하게 운명을 마치게 된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유명한 말은 “인간이 명(命)을 알면 군자(君子)”라고 했다. 보통사람이 자신이 언제 죽을 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인생을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탐욕에 악업을 태산같이 짓기 보다는 현명한 인생을 살 수도 있다.

어떻게 하면 명(命)을 알고 살 수 있을까? 오행(금♥목♥수♥화♥토)공부를 통달한 고명한 명리학자를 찾아가 나의 정해진 운명에 대한 감정을 듣고 사는 것도 일종의 반야사상이라 나는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부처님이 강조하신 인연법에 의거 악연, 선연을 구별할 줄 알고, 인과응보의 업보사상을 믿고, 마하반야 사상으로 인생을 살 수 있다면, 일장춘몽(一場春夢)과 같은 제행무상의 인생에 큰 홍복(洪福)이 되리라 나는 권장하는 바이다. ◇

李法徹(이법철의 논단 대표)

2020.03.09..05:36 海印導師 修正 加筆하다.}
海印導師 20-03-13 15:50
답변 삭제  
이하, 원문을 참고해서 서두의 글을 다듬게 되었다라고라~~~ㅎ~~~

즉,
막말로,

동족을 노예나 착취대상으로 삼은 유일한 민족이자, 부끄러운 한반도 이 땅에 신흥종교와 미친 사이비 종교가 발흥하는 이유를 나름 개인적인 두뇌를 활용하여 몇 자 적어보았다. 물론, 海印東洋哲學院 자유게시판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간단하게 복사해서 퍼왔을 뿐이다.

즉, 韓半島의 그 유명한 <惑世誣民>의 泰斗는 바로, 대구시 소재 달성공원에서 惑世誣民한 大逆罪로 날라간 목이 장대에 높이 걸려서 천하의 인민에게 조롱당한 先覺者 최수운 先生에서 시작한다. 그 다음은 구한말 이씨조선이 망하기 전, 自殺로 생을 마감한 강일순으로 이어진다. {참고: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 : 1824~1864)ㆍ모악산(母岳山)의 증산 강일순(甑山 姜一淳 : 1871~1909)}

그 후, 6.25사변 발발로 죄없는 천하의 중생이 수백만명 죽어나가고(외국의 사례를 한반도 좁은 지역에 사는 중생이 죄없이 수천만 명이 죽어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가 없었다) 하루 아침에 친척이 흩어지고 재산이 없어지는 등의 불교의 효능(고려시대 팔만대장경판 제작으로 강국인 몽골에 대항한 수세적인 방법 실현 등?)을 천하의 중생이 의심하게 되자, 그 틈을 비집고 전쟁통에 들어온 기독교가 이 땅에 활개를 치면서 산업화에 발맞추어 勃興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당시 접한 기독교 교리와 선각자 최수운의 가르침과 선각자 강증산의 교리를 섞어서, 천하의 어리석은 중생을 착취하는 수법으로 교묘하게(실제는 황당하고 유치한 수준의 설교) 요상한 교리를 뒤섞은 다음, 천하 중생의 재산과 정조와 용역을 가로채는 수법으로 소위 <惑世誣民>해온 것이 바로, 한반도 특유의 신흥종교와 사이비 종교를 만들어 천하 중생에게 피해를 끼쳐온 사이비 종교의 開創者와 그 追從者가 天罰을 받아 마땅할 罪業으로 활개를 친, 이 땅에서 일어나는 역사적인 현장의 모습이다.

물론, 유사 이래로 인간의 想像力이 오늘날의 위대한 과학발전을 가져오게 되었고,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생명체 유전자 조작에 이를 수 있는 赫赫한 功을 세우는 端初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상상력의 방향이 소위 佛家에서 말하는 <正法과 八正道>를 벗어나는 방향으로 핸들을 조정할 경우, 시도하는 당사자는 물론 그의 자손까지도 火急하게 敗亡의 쓰라린 맛을 보게 됨을 <彫花와 均衡>을 이루어 나가면서 <諸行無常>인 위대한 어머님 이 땅 地球와 위대한 아버님 太陽이 존속하는 그날까지 변함없이 적용되리라 판단하여 기록한다. 끝.

海印導師. 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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