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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3-09 06:41
고타마 싯다르타 上古
 글쓴이 : 海印導師
조회 : 188  

이하 사전상의 설명을 옮겼다.

즉,

석가모니(Sakyamuni)
석가족 출신의 성자

ⓒ Tevaprapas Makklay/wikipedia | CC BY-SA 3.0

석가족이 거주하던 지역은 네팔과 인도의 국경 부근에 있는 한 지방인데, 현재의 지명으로는 우타르프라데시의 북방이다.

북으로는 히말라야 산맥, 남으로는 갠지스 강으로 유입하는 많은 지류가 있어서 풍부한 물을 이용한 벼농사를 중심으로 하는 농업국이었으며, 일종의 공화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다만 남쪽의 대국인 코살라국에 인접한 탓으로 주권은 코살라국에 종속되었지만, 자치권은 인정되고 있었다. 그런 석가족의 우두머리인 정반왕(淨飯王 Suddhodana)이 석가모니의 아버지였고, 어머니는 마야(Maya) 부인으로 알려져 있다.

정반왕이라는 호칭에서 나타나듯이 석가족 집단의 우두머리는 라자(raja:왕)라고 불렸지만, 이는 통치자를 의미하는 군주의 칭호가 아니라 단순히 행정상의 수장(首長)이라는 직권을 의미하고 있었다. 석가모니는 BC 6세기 혹은 BC 5세기에 석가족의 수도인 카필라바스투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출생연도에 대해서는 약 100년의 시차로 견해가 갈리는 많은 이설(異說)이 있고, 특히 남방의 불교도는 BC 624년에 태어난 것으로 믿고 있다. 석가모니의 탄생은 태몽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어머니 마야 부인은 석가모니를 낳기 전 아름답고 은처럼 하얀 코끼리가 그녀의 옆구리를 통해서 자궁 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출산일이 다가오자 왕비와 수행원은 카필라바스투를 떠나 데바다하에 있는 친정으로 가던 중에 두 도시의 주민들이 공동으로 소유하던 룸비니(Lumbini)라는 동산에서 석가모니를 낳게 된다. 전설에 의하면 부인이 살라나무에 오른쪽 팔을 올려 가지를 붙잡았을 때, 그 오른쪽 옆구리로부터 석가모니가 탄생했다고 한다. 석가족의 토템인 살라나무 숲은 룸비니라는 지모신(地母神)을 받드는 곳이었으므로 출산의 장소로는 적격이었다.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전하는 것은 왕족 계급인 크샤트리아가 신의 양팔로부터 발생했다는 〈리그베다 Rigveda〉 이래의 전승과 관련되어, 석가모니가 크샤트리아 계급의 출신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고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석가모니와 같은 종교적 위인은 보통의 방식으로는 태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며, 또 인도에서는 오른쪽을 깨끗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전설이 성립했다고도 볼 수 있다.

탄생 장소는 현재 룸민데이라 불리며 네팔의 영토에 속한다. BC 3세기의 유명한 아소카 왕이 그 탄생지를 기념하여 세운 석주가 후대에 그곳에서 발견되어 석가모니의 출생지임이 확인되었다. 생후 7일째에 어머니 마야 부인은 산후의 상태가 악화되었던 탓인지 사망했고, 석가모니는 어머니의 동생인 이모 마하파자파티(Mahapajapati)에 의해 양육되었다. 생후 5일째 또는 7일째의 명명식에서 싯다르타(Siddhartha)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 말은 산스크리트로 '목적을 달성한 자'라는 뜻이므로 아마도 후대에 붙인 이름일 것이다.

그의 성(姓)인 고타마는 '가장 탁월한 수소'를 의미하는데, 이는 이 시대의 부족사회에 있었던 동물숭배, 특히 인도에서의 뿌리 깊은 소에 대한 숭배 관념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석가모니의 탄생에 관한 또 하나의 유명한 전설은 아시타라는 선인(仙人)의 예언이다. 신생아가 태어난 날의 별자리에 따라 길흉을 점치는 것은 당시의 풍습이었으므로 정반왕도 이 방면의 대가들을 불렀다.

아시타는 이 아이는 위대한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든가 아니면 부처(覺者)가 되어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펴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자신은 이미 늙었으므로 성장한 후의 그의 가르침을 들을 수 없을 것이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석가모니의 탄생 전설은 석가족의 관심이나 의례를 고대 인도 당시의 표현형식으로 전하고 있는 점이 많고, 경전 역시 마찬가지로 고유한 표현형식을 취하고 있으므로 그 하나하나를 해명함으로써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

석가모니의 탄생일에 관해서는 2월 8일, 베사카 달의 후반 8일 혹은 후반 15일 등 여러 전설이 있다. 석가모니의 전기를 취급한 것으로서 중국에서 번역된 경전에서는 4월 8일이라 하는데, 이는 번역자가 인도의 베사카 달이 음력 4월에 상당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과 일본 등지에서는 음력 4월 8일을 탄생일로 믿고 있으나, 남방의 불교도는 베사카 달의 보름날에 탄생·성도·열반이 있었다는 전승에 근거하여 '베사카 제(祭)'를 성대히 시행하고 있다(스리랑카에서는 '웨삭제'라고 함).

海印導師. 記錄하다.


海印導師 20-03-09 19:47
답변 삭제  
나는 위 글을 읽고나서~~~

새삼스러운 것을 느꼈다.

사실, 위 사실(석가를 낳은 지 일주일만에 어미가 귀천세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서도~~~

머시라, 여인은 産道가 작거나 아기 출산시에 골반이 잘 벌어지지 아니할 경우, 帝王切開術을 할 수 없었던 옛날에는 출산 중에도 産母가 死亡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摩耶夫人도 그런줄 그냥 대수롭지 않게 알고 지나왔다는 사실은, 별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 이 내용을 읽을 시점에 새로운{설령, 석가는 이모의 손에 잘 자라났지만서도, 그 姨母의 私的인 慾心(자신의 소생을 정반왕의 후계자 王으로 키우기 위하여, 고타마 싯달타가 10살 즈음에 일부러 그러한 사실을 알렸다?)으로 의도적으로 석가의 생모가 석가를 출산중에 사망한 사실을 알릴 수 있었다?란 사실을 상기하게 했다.

그래서 인간이란 동물은 <천하에 믿을 연놈없다>란 철칙은 시대에 상관없이 적용되는 것이구나~~~라는 느낌에 위 글을 퍼 와서 새삼스럽게 올렸다라고라~~~ㅋㅎㅎㅎ~~~

만약에 이법철 스님이 귀천세하지 않고 5월 5일 이후(陽의 기운이 드리울 때) 海印을 만난다면, 아마도 누가 죽든지 상관하지 않고 막걸리나 소맥을 진탕마실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ㅎ~~~

海印導師.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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