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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7-31 11:07
 글쓴이 : 상곡
조회 : 381  
얼마 전 바이올린에 대한 애정도 늘릴 겸, 유익한 정보도 얻을 겸 하여 바이올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한 인터넷 카페에 가입을 했더랬지요. 가입된 사람도 그리 많지 않고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소박한 카페였습니다. 요새 연습 상황이나 대충 가벼운 내용으로 글을 하나 적었는데 다음날 댓글이 여러 개 실리더군요. '네이버'의 카페는 아이디가 '블로그'와 연결이 되어 있어서 각 회원들은 자신이 블로그를 하든, 안하든, 다른 사람이 그 블로그를 들어갈 수 있답니다. 그 중 '박쥐 백작'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사람이 글을 하나 남겼길래 아무 생각 없이 그 분의 블로그에 발을 들였습니다. 이것저것 글을 적은 것이나, 사진 등을 보면서 그 사람이 지금 저의 학교에서 매우 가까이 있는 순천향의과대학교에 재학 중인 것을 알았으며, 그 역시 의대 내의 오케스트라 동아리에 가입되 있고, 본과 2학년인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역시 저와 마찬가지로 피아노를 몇 년간 쳤으며, 바이올린도 7~8년 배웠고, 취미로 전자 바이올린으로 이런저런 곡도 하며, 아마츄어 대회에 나가기까지 하는, 또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나와 매우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라는 것 이었습니다
잠시 재수시절이 떠오르더군요. 공부도 하기 싫었었습니다. '현실' 이라는 단어와 그 단어와 관련된 여러 어른들의 통념들은 더더욱 싫었습니다. 한때는 그냥 힘든 상황을 극복해내지 못하고 도피하려고만 하는, 어린아이의 투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가족이 모두 힘이 든 상황이라, 또 학원에는 나와 같이 다시 공부하려는 사람들만 있어 곧 잊기도 하였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항상 나타났습니다.....하지만 자기 전에 항상, 수능에 멋지게 성공해서 한의대나 치대에 입학, 졸업 후 여유가 생기면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여 전공을 하고, 나 자신의 무한한 만족감을 느끼는, 먼 시간 뒤를 상상했습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비웃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또 각종 고정관념과 통념으로 나를 공격했을테지요. 하지만 저는 상관 없었습니다. 심리적 고통을 잠시 가시게 해주고 다음날의 의지를 다시금 불태울 수 있는 매개였으니까요...9월 달에 시작한 고시원 생활은 그 상상력을 더욱 자극시켰지요. 도시의 꺼지지 않는 빛 속에서도 , 자신을 빛을 잃지 않고 반짝거리고 있는 별을 고시원 옥상에서 바라보며 그 누구보다 행복한 미래를 꿈꾸었으니까요. 하지만 소년은 그 시절을 벌써 잊고 살았습니다. 박쥐백작이라는 분은 저로 하여금 뒤통수를 한대 쎄게 얻어 맞은 듯한 느낌을 선사하시더군요. 그의 블로그 제목을 보는 순간 다시금 결정타를 맞았지요.
' 꿈을 찾아서, 나를 찾아서 '
'나' 라는 존재를 상실하고 산다는 것만큼 쉬운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각종 자극적인 정보와, 그를 전달하는 빠른 매체를 통해 사람들의 의식을 갉아먹음으로써 굴러가는, 현대 사회의 특성상 그것은 더더욱 쉬운 일이지요. 굳이 거창하게 표현 하지 않더라도 개개인에게는 그 유혹이 매우 큽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동기들과의 생활, 동아리 활동, 기숙사, 타지의 친구 및 지인들과의 관계 이 모든 곳에서 '나'를 놓고 그 상황에, 그 흐름에 몸을 맡겨 생활하는 것은 매우 익숙하고도 편안하기 까지 합니다... 그렇죠.... 편안한 것이죠...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 하는 '적당히~ 묻어가는~' 이런 단어들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겠군요.
그냥 하하 호호 웃으면서 농담이나 하고... 그저 짜여진 일정대로, 몸이 가는 대로, 그러다가
한눈 팔기도 하고..... 하지만 어딜 가나 의식은 없습니다.

소년은 어디로 간 걸까요?
소년의 실체는 어디로 간 걸까요.
소년과 대화를 나누던 그 많던 별들 또한 요새는 왜이리 보이지 않는 것일까요.......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궁금해졌습니다. '박쥐백작'이라는 이 사람은 과연 현재에도 자신의 꿈과 열심히 대화를 나누고 있을까?......서슴지 않고 몇 번의, 얼굴을 익히는 대화를 며칠에 걸쳐 주고 받은 뒤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까?
아니면 더 본질적인 그 무엇을 찾고 계십니까.....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민감한 질문을 던지는 것 같기도 싶어 미안한 감정이 들었지만 다음날 가서 확인해보니 답글이 올라왔더군요. 그 본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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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이란 것은... 참 많이도 왜곡되지요...
더욱이나 이런 인터넷상의 정보들... 블로그에서 보이는 것은 특히나 더하구요.
그럴싸한 것들만 그럴싸하게 꾸며서 남들 보라고 올려놓으니
코왈스키님 (제 카페 아이디 입니다) 이 그렇게 생각하실수도 있겠어요..... ^^ㅋㅋ;;;

어쩌다가 의대에 굴러들어왔지만....
그래도 꿈은 음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뭐 한땐 미술이었지만요;;)
다 안되더라구요... 미술도... 음악도....
게다가 아직 의사되려면 한참 멀었는데 벌써부터 이쪽길이 너무 싫어져서...
제 꿈이 무엇일까요... 모르겠어요...
뭔가 갈망하고 원했었는데, 나름대로 그것에 가까이 다가갔다고 생각했을 때
느끼는 심정은... " 아... 내가 생각했던 것은 이게 아닌데... "
뭐가 진짜인지... 허구인지... 요즘들어서는 더더욱 모르겠습니다.
에고 횡설수설...-_-.... 결국 결론은 그냥그냥 대충 살아가고 있다는 답이 나오는군요;;;;;;
코왈스키님 덕분에... 그래도 몇 초나마 생각 좀 했네요... 감사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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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을 읽은 뒤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첫째는 안도감이었습니다. 나보다 더 나아 보이는(그의 말에 따르면), '자아' 와 더 긴밀히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보이는 자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혼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가져다주는 비겁한 안도감이었지요.

둘째는 실망감이었습니다. 그나마 이 사람은 대화를 위한 시도를 항상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혼란감에 힘들어하는 그를 보면서 나 또한 잃어버린 나의 별을 찾으려는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닐까....... 하는 실망감이었지요. 맥이 풀리더군요....요새는 그냥그냥 대충 살아가고 있다는 그의 발언은 그 또한 '내부의 나' 와 연결된 끈을 놓쳐버린 상황이라는 것이겠지요...... 한 인간으로서 주어진 인생을 참답게 산다는 것은, 그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것은 완벽한 찰떡궁합의 배우자를 만나 일평생 사랑하는 것도 아니요, 물질적 부를 힘입어 명예를 세우고 세속적인 성공을 거두는 것도 아니요, 인간 존재 목적의 성찰도 없이 맹목적으로 '신'을 추앙하고 만족감을 얻는 것도 아니라 인생은 '진정한 나'를 찾는 과정임을 깨닫고 그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저로서는 이 사태가 큰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나마 힘을 준 건 얼마 전 읽었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라는 소설의 메시지였지요. 사람은 항상 자기 자신의, 내부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귀기울여야 하며, 거기에 충실해야한다.왜냐면 개개인의 꿈은 항상 '나'라는 존재를 사랑하고 있고 때문이며, 거기에 부합되는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참된 인생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요약할 수 있겠지요. 또한 친절히도 참고 사항도 곁들여 주더군요. 자아가 요구하는 꿈은 변할 수 있으며, 인간은 그 꿈에 충실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

캐나다를 다녀와서, 또 이 책을 읽으면서, 작년의 제 생활을 반성하면서 요즘 부단히 나와의 대화를 시도 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일이더군요. 긴 밤에 걸쳐 새벽까지 내리깔렸던 안개가 서서히 사라지듯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겠지요. 다만, 상념에 젖어 늦은 밤 편지를 적는 이 소년이 또다시 자신을 잃어 현실이라는 명목 하에, 혹은 이미지가 판치는 세속적이고 휘황찬란한 유혹에 빠지지 않기만을 바랄뿐..........

p.s : 적다보니 길고, 제 의도가 잘 표현되지 않은 것 같기도 해 답답하기도 합니다. 또, 결국엔 '사람'과 '생'이라는 똑같은 주제를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수 많은 명언과 철학, 가치관이 있다는 것 또한 압니다. 더 큰 인간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신다면 엄청난 힘이 될 것입니다. 사랑합니다.

와이리 21-07-31 11:22
답변  
달수씨의  치과의사 아드님이 쓴 글이네요........ 꿈...
西岳 21-07-31 17:17
답변  
상곡 선생님은
최고 행복하시네요

칫과의사 아들 장하고
또 글도 멋있게 잘 쓰고

따님은 민속 만화그림 잘 그리고
책도 나왔고 ...
김일호 21-08-04 03:21
답변 삭제  
상곡이 누군가 했더니 달수구나! 글을 읽다보니 데미안도 나오고 옛날 고전 얘기라
어라! 이 할배 괜 찮네 . 아들 얘기 였 ? 하지만 여기 글 올리는 것 보면 본인  또한
비슷한 생각이었을 거란 느낌이 왔네.

 꿈에 나이가 있을까?
 어줍잖게도 나도 요즘 악기 하나를 주물력거리고 있네. 큰 손 안으로 들어올 것 같은 오리를 닮은 오카리나 라는 악기를 들고 삑삑거리는 나를 두고 아내와 아들이 야유를 보내지만 나는 그  말이 응원가라는 것을, 한 십년이면 멋진 곡을 연주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며 오늘도 주야간 삓삑거리고 있네.
김일호 21-08-04 03:36
답변 삭제  
[일사일언] 재봉틀 잡은 시인

  친구들이 퇴직해서 속속 집으로 돌아왔다. 직장 다닐 때 집은 충전소였지만, 갈 데 없어 집에 머무니 폐기된 기분이란다. 여행도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고 할 땐 시간이 잘 가던데 그도 1, 2년이더라고. 집에만 있으니 할 일 없는 구름만 잔뜩 낀 나날이라 우울증 걸릴 것 같단다. “넌 글 쓰니까 지루하지 않겠다” 한다.


“밤낮으로 글만 쓰냐?” 했지만, 실상이 그렇다. 글은 퇴직하기 전부터 ‘돈 안 생기는 연금’으로 해 온 것이다. 반면 요즘 나는 늦게 재봉을 배우느라 집에 천 조각이 남아나는 게 없다. 조각조각 광대처럼 붙여서 입고 나서면 혼자 즐겁다. 친구에게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평소에 무엇을 하고 싶어 했는지 생각해서 지금부터 시작하라”고 했다. 글쓰기도 한 이십 년 매진하다 보니 반풍수는 되는지 누구를 가르쳐 본 적 없는데도 팔자에 없는 선생님 소리도 듣는다고.

어느 전직 교수가 95세에 운명을 앞두고 자식들에게 “퇴직했을 때 이 나이에 뭘 하겠느냐고 미리 포기하지 마라, 나처럼 30~40년을 죽는 날만 기다리느라 허송세월하게 된다. 퇴직하고 바로 뭘 시작했으면 30년을 현직으로 행복하게 살았을 거다. 배우느라 재미지고 한 10년 하다 보면 전문가 되어 사회적 지위도 얻고, 전직(前職)은 아무 소용 없다. 현직으로 평생 즐길 직업을 만들라”하셨다고.


한 친구는 요즘 오카리나 배운다고 자랑을 한다. 아직은 원곡 멜로디보다 헛바람 새는 소리가 더 나지만 “망년회 때 한 곡 불어달라” 주문 하니 팔을 저으면서도 좋아한다. 그러면 된 것이다.

나도 비록 신인이지만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평생 현직이다. 즐기면서 열심히 쓸 것이다. 아직 딸, 아들이 미혼으로 있어도 나중에 생길 손주들 옷 만들 생각에 들떠 있다. 옆 지기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고 푼수라 한다. 푼수면 어때 즐거운데. 옆 지기랑 같이 글도 쓰고 짬짬이 텃밭에 잡념으로 자라는 잡풀도 미운 사람 머리카락 쥐어뜯듯이 뜯고, 상처 묻은 헝겊들도 붙였다 뜯었다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지금도 돋보기 코에 걸고 바늘귀 찾느라 골몰이다. 어떤 명품이 될지 기대하시라.

/김광희 2021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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