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8-29 10:16
스님이란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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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海印
 조회 : 1,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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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命理學問(명리학문)에서는 주로 사주팔자의 구성이 火土重濁者(화토중탁자)나 金水傷官者(금수상관자)가 스님이란 職業((직업)을 가진다고 설파하고 있다.
다시 말해, 特定 個人의 四柱가 위와 같이 두 種類•종류(지나치게 뜨겁거나 지나치게 寒冷•한랭한 氣運•기운의 所有者•소유자)가 되면 人間(인간)의 個人的(개인적)인 性情(성정)이 그렇게 특별하게 構成(구성)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은 태생적으로 孤高(고고)함을 사랑하고 속세의 일반적인 混濁(혼탁)함을 근원적으로 싫어한다. 그렇지만 사회에서 當場(당장) 相對(상대)하고 만나고 부딪치는 사람은 거의 一般人(일반인)이기 때문에 他人(타인)의 正常的(정상적)임을 認定(인정)하기 싫어하고 어울리기 좋아하지만, 쉽게 親(친)하거나 어울리지 못한다.
어찌보면, 自身(자신)의 지나침을 認定(인정)하기 싫어하고 他人(타인)의 正常的(정상적)임을 認定(인정)하지 아니한다. 그래서 所爲(소위) 말해서 무한하게 거대한 우주를 갈망하고 神佛(신불)에게 自身(자신)의 모든 것을 依託(의탁)하기를 즐긴다.
첫째, 땀 흘려 노동을 하지 아니하고 생존에 필요한 음식과 영양분을 취할 수 있다. 그러한 이유나 핑계로 입문하는 부류 즉, 거꾸로 노동이 근본적으로 싫어서 수행 생활을 자원하는 자가 간혹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부류는 대다수가 꾸준하게 宗敎人(종교인)이나 修道人(수도인)으로 생활하지 못하고 속칭 破戒(파계)를 거듭하면서 왔다갔다 부평초같이 반복하는 인생을 마친다.
둘째, 海印 논지의 拘礙(구애)없는 한 방향이라면, 현실적인 수많은 스님을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하 생략한다.
하여간, 火土重濁者나 金水傷官者일지라도, 命理學問(명리학문)의 世俗的(세속적)인 一面(일면)을 講論(강론)하자면, 이렇다.
즉, 그들도 특정 인간이므로 소위 逢運(봉운)하면 大體的(대체적)으로 本人(본인)의 理想(이상)을 實現(실현)하거나 他人(타인)보다도 卓越(탁월)한 個人的(개인적)인 氣質(기질)을 成就(성취)시킬 可能性(가능성)이 높다. 한 방향으로 치열하게 渴求(갈구)하는 어떤 性情(성정)이 그러한 結果(결과)를 불러들여서 所願成就(소원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사실 이러한 글을 쓰게 된 원인은 kj3021 동기생 중에 스님이 된 사람이 공식적으로 네 사람(최석호 법륜스님과 네팔 대성 석가사 법신 스님과 최근 알게된 원종 스님과 산내 거주 성철스님 등) 있다. 그 때문이었다. 나머지 非公式的(비공식적)인 스님(海印導師외 잘 모른다)이 있다.~~~흠~~~
내가 스스로 비공식적인 스님이라고 말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첫째, 갑오년 7월 4일경 국가경찰공무원 33년을 마치고 정년퇴직했고, 해인동양철학원을 개업한 이후로 오늘 아침까지 특별한 일이 없다면 매일 아침 CD를 틀어놓고, 천수경부터 반야심경까지 불경을 따라 외우면서 아침 예불(당 건물의 前 주인 사무실을 개조해서 소위 "법당"을 만들었는데, 그곳에 임신년 경, 참여한 "팔만대장경 금속판" 佛事 공덕으로 장경판 제작사에서 직접 선물로 보내준, "팔만대장경 반야심경" 金屬八萬大藏經板(금속팔만대장경판) 한 장을 모셔왔다)을 "금속판 팔만대장경판" 앞에서 지속적으로 경건하게 매일 아침에 早朝禮佛(조조예불)을 올려왔다.
둘째, 海印의 출생지였던 경북 경주시 마동 987번지 토함산 兌金방향으로 펼쳐진 들판 가운데 위치한 과수원에서, 태생부터 토함산 석굴암에서 부모님께서 딸 넷을 얻고 나서 대를 이을 아들을 얻기 위해 백일기도 천일기도 축원을 하고, 과수원 北川(북천)의 湧泉(용천)에서 용왕님에게 得男祈禱(득남기도)를 올려서 드디어 本座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전설을 들으면서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셋째, 나의 명리학문과 풍수지리 기타 개인적인 각종 수련 무술과 종교와 철학사상과 천문지리 등 관련 학문을 더욱 배우고 익혀서 선량한 인연이 닿는 천하의 중생에게 전파하는 중이고, 장차 예정되어 歸天世(귀천세)하는 그날까지 널리 부족함 없이 실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끝.
海印導師. 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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