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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9-21 22:01
묘청아! 시카고 좀 시끄럽네
 글쓴이 : 海印
조회 : 612  


이곳에 마우스를 클릭하면 관련 기사내용이 보인다.

야근 들어와서리 보니 시카고 총격이란 단어가 보여서 몇 자 썼다.

海印.


묘청 13-09-22 00:15
답변  
내 가게에서 40분정도 떨어진 곳인데 그곳은 완전히 흑인 들만 산다.
정작 시카고 사는 사람들은 조용한데 국제 뉴스가 돼 버렸네.
우리는 괜찮지만 주말만 되면 동네 깡패들끼리 총싸움을 하니 그 방향으로는 얼신을 말아야 한다.
그래서 누구던지 경찰한테 게기면 죽는다.
총도 여러자루 가지고 꼭 두 사람이 한조가 되어 순찰을 돈다.
무서운 곳이지만 법만 지키면 아무도 찍자를 안 붙는다.
작년에도 500명정도 총싸움으로 희생되었네.
올해 유독 무더위에 더욱 총격사건이 많았다.
조심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겠나.
걱정해줘서 고맙다.
西岳 13-09-22 01:08
답변  
미국의 대부분 큰도시 에서는
매일 총기강도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흑인마을 근처 가게는 일년에
 몇번은 총기강도가 든다.

경찰이 총기 강도사고에
투입하여 왱왱 사이렌 울리고
백차 patrol car 가 시끄럽게 지나가는 광경을
매일밤 12번 더 사이렌 듣고 살아 간다.

서부 개척시대 이후 미국에서는
 누구나 총기 매매 구입 소유가 합법적이고
미국 민주주의의 사회 질서 근간이
니도 나도 총기 소유에서 나온다.

미국 헌법 제2조 에 모든 국민은 누구나
총을 소유할수 있다고, 헌법 조항에
명기되어 있다.

헌법 조항에 있으므로 총기소유의
법적 제한을 할수 없게 되 있다.

총기사고 총기강도 사건의 작은 피해보다는
자유 와 민줒주의가 훨씬 더 중요하기
총기사고 강도를 어느정도 감수하고 살고 있다.

미국에 시카고, 디트로이트, 엘에이, 아틀란트
등 대도시 흑인 마을에 해인도사 혼자서
며칠간 투숙 살아 봐야
쪼매 위험 하겠지만,
다사다발의 총기사고 강도가
밥먹듯이 매일 수십번 발생하는 일과성
가벼운 일상으로 느낌이 통체 체감 올끼다.
海印 13-09-22 01:15
답변 삭제  
야튼 괜찮다니 다행이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개인의 총기휴대가 법적으로 불법이니, 한국 경찰은 안전하게 잘 해 먹는다.

제 아무리 필필 나는 넘이라도 총 앞에서는 대책없다. 방탄복 위에 총알을 맞아도 멍들고 충격이 크다.

향후 세월이 흘러 한국에서도 개인의 총기휴대가 합법화된다면, 참으로 여러사람 어려워질 전망이다.

좌우지간에 넓은 땅에 살러 갔으니 미국땅 좋은 곳 구경이나 많이 다니면서 노년을 즐기도록 하여라.  이상.

海印.
西岳 13-09-22 01:21
답변  
미국 이민가서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은
내년게 내년게 여행 가볼 계획을
미루다가 수십년 평생 세월 다 보내고.
미국내 멀리 여행 가본 이민자들은 거의 없다.

생업에 다들 너무 바쁘게 살고 있다.

오히려 한국에서 열흘 ~ 스무날
미국에 댕기러 간 사람들이 훨씬 더
서부, 동부 여행 관광하고 온다.
海印 13-09-22 01:31
답변 삭제  
海印은 야근중이라 자고 싶어도 못 자지만, 서악이는 이 시간에 뭐하노?

서울 살면서, 남산타워에 두 번 올라가고, 63빌딩 두 번 올라가보고, 북한산 백운대에 작정하고 갑인일에 딱 한 번 올라 가서 재수가 좋던지 날씨가 청명하여 북한 송악산을 본 것하고 비슷한 비유네.

그랴! 미국에 살면서 미국 땅 이곳 저곳 구경을 마음대로 갈 시간이 없다는 말은 조금 설득력있게 들린다.

그래도 우리같은 한국 촌놈은 생전에 미국땅 한 번 밟아보고, 워싱턴과 뉴욕의 고급식당에서 밥도 한 번 먹어봐야 되질 않겠는가?

오늘따라 무임승차가 많다. 벌써 두 건이나 직원들이 처리하고 있다.

잘 자라. 묘청은 잘 놀면서 일하고...

海印.
묘청 13-09-22 04:05
답변  
"서악"은 시시한 L.A. 교포보다 모든 것을 더 많이 안다.
길눈이 밝아 교수가 못 되었으면 택배사장은 따 논 당상이었을꺼로.....
그렇다고 아는척도 안한다.
"와이리"나 "성기"같으면 동네가 시끄럽다.
"해인아"! 오늘은 "무임승차"가 많다는데 무신 말이고?
시카고는 차에 선텐(Window Tinting)을 앞의 두유리는 법적으로 못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차안에서 총을 뽑는 것을 분간키 어려우니까.
벌금 티켓이 250불이다, 경찰한테 걸리면....
"서악"이 한 말씸이 다 맞다.
간다, 간다. 고향 간다카다가 부모 죽고, 머 죽고 결국에는 고향을 못 찾는 교포도 부지기수다.
"금의환향"카지마는 그것이 안 쉽따.
"서악"은 미국 헌법도 꿰차는 사람인데 더 할 말이 업따.
제2의 "양수"라고 해야겠다.
잘 자거라.
너거가 잘 때, 나는 일하고.
너거 일 할 때, 나는자고.........9/21/13. 박성기 씀.
海印 13-09-22 05:20
답변 삭제  
쌍문파출소가 도봉경찰서 관내에 제일 조용한 파출소라 즉결심판 청구 사건인 <무임승차> <무전취식> <판돈 20만원 미만 동전도박> 등 즉심사건이 잘 안 걸린다.

그런데 어제는 같은 시간대에 별난 영업용 택시기사 때문에 <무임승차> 즉심사건을 두 건이나 접수하여 훈방 처리했다. 그냥 보고 넘어가려다가, 팀장자리에 않아 있던 海印이 간섭하여 <젊은이! 나의 말은 업무와는 상관없는 말이지만 함 들어보겠소? 택시타고 와서 택시비로 상호 마찰이 있었던 모양인데, 사나이가 단돈 몇만 원 때문에 파출소로 와서 즉결심판 딱지를 받으면 나중에 지방법원에 출두하면 시간과 돈이 동시에 손해가 나는 데, 현재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니, 좀 참고 상호 이해하고 원만하게 해결하여 집으로 현재시간 돌아가는 것이 여러모로 이익이니 그리 하소.> 라고 말하니까,

나중에 들어 온 자가 말하기를 <카드도 되요?> 물론 된다고 했다. 그래서 한 넘이 택시비를 지불하고 파출소에서 나가는 광경을 보더니, 먼저 들어와서 <택시 운전기사가 욕을 했는 데, 그것을 처벌하지 않고 나의 무임승차만 처벌하느냐고 바락바락 악을 써대던 젊은 넘이 슬거머니 이렇게 말했다. <나도 카드도 되요?> 그래서 그치는 택시 대기요금까지 물고서 집으로 가게 되니 즉심사건 두 건을 훈방처리했다.

소위, 법정까지 갈 사건을 무료 변호사 역할을 해서 각자 집으로 돌려 보냈다. 뭐이라? 파출소 업무가 대충 이렇게 돌아 간다. 미국같이 총쏘고 자시고 지랄 한다면 어디 해 먹겠는가? 海印이 미국에 살았다면 아마도 장거리 화물트럭 운전이나, 땡중질이나, 잇빨로 사는 목사(내가 작정만 하면 주기도문 사도신경 찬송가 기가 막히게 줄줄 잘 외우고 성경을 교과서 보다도 많이 읽어서 사이비 설교 진실같이 잘한다. 안 해서 그렇지 ㅎㅎㅎ)나, 합기도 도장 사범이나, 상황이 최악에 처했다면 내가 선제공격을 할 수 있는 마피아 조폭을 해 먹었을지는 몰라도, 돈(월급) 몇푼 받고 까닭없이 총 맞을 가능성이 많은 미국 경찰은 절대로 하질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지난 날 칼과 흉기를 들고 대드는 범인들은 몇 건이나 주위의 지형지물이나 경찰봉이나 수갑(가볍고 단단한 영국제 수갑 이것 손가락 네개를 집어넣어 단단하게 잡고 잘만 이용하면 칼보다 더 무서운 방어무기 내지 흉기로 사용할 수 있다.) 등을 이용하여 제압하고 인정사정없이 체포하여 구속시킨 일이 있었다. 그런데 총과 폭탄 앞에서는 天下의 海印도 대책없다.

또한, 오늘은 기가 막힌 날이다. 즉, 컴퓨터 공학박사에게 미국 헌법 제 2조 강의를 다 듣는 희안한 날이다. 서악이 잠이 안 와서 졸지에 컴 앞에서 미국 헌법을 강의하는 법률학 교수가 되어 버렸다.

그랴! 듣고 보니 미국이란 나라가 무시무시하고, 그러나 잘만 하면 무지무지하게 재미있을 것 같은 상념이 머리에 스친다. 영화속의 여배우나 미국 부통령 방문시 사이카 에스코트 할 때 만났던 기가 막힌 미인이고 몸매 잘 빠진 미국의 젊은 여성들의 잔상과 함께 말씀이다.

어차피 한 세상 살 것을, 海印도 젊을 때 아메리카로 이민을 가설랑 좀 더 큰 땅에서 무엇을 해봤으면 하는 상념이 떠 오른다. 그러나 海印은 현재 직업이 대한민국의 경찰이다. 그 과정에서 역사적인 사건현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적도 있었다. 그것을 직접적으로 말은 못 하지만 내심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니까 현재 스스로 노력하여 나름대로 인생을 개척하면서 굳굳하게 살아 온 경찰직업의 길은 후회란 없다. 토목기사직책에서 경찰직업으로 전직한 선택은 어디까지나 나의 자유의지로 결정하고 실행해 왔으니까 말씀이다.

쌍문동에서 새벽근무중에.....

海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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