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장은 벌써 초겨울이다.
창 넘어로 바라보는 죽장 산천은 잿빛으로 바뀌어가고
새벽 공기는 시원하지만 제법 쌀쌀하다.
내가 서포고 기숙사 사감으로 근무한지도 벌써 1년이 저문다.
친구들은 나를 미친 놈 취급을 하더라만
사람이란 다 개인적인 사정과 생각이 있고
그 생각이 자신들의 생각과 상충한다고 해서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듯 싶다.
나는 사감생활에 나름 만족한다.
이것도 분명 직장인지라 왜 어려움이 없겠나만은
학생들을 등교 시키고 난 후의 자유시간이 너무 좋다.
오전은 커피 한 잔에 시카고박이 보내 준 음악과 함께
컴의 바다를 헤엄치다
오후에는 죽장산천을 주유하며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도 설계하고 생각을 정리함이 나는 너무 좋다.
내 인생을 도리켜 보면 참 바쁘고 힘 겹게 살아 왔다 싶다.
지금의 여유는 나를 너무 행복하게 한다.
철부지 학생들과도 나무라고 달레고 혼 내키며 씨름 하다 보니
이젠 정이 들어 모두가 늦둥이 자식처럼 사랑스럽다.
말썽쟁이들도 대화해 보면 심성이 착하고 순진한 게
더도 덜도 아닌 고등학생들이다.
기숙사생들 중에 조아랑이란 1학년 학생이 있다.
포스코 직원인 아버지와 중학교 선생인 어머니 사이에
삼남매 중 둘째인 수수하고 평범한 학생인데
그 애는 다른 학생들 보다 조금은 다르다.
7시 기상음악이 울리기 전에 먼저 일어나 씻고
일어나기 싫어하는 같은 방(4명 기거)친구들을 밀쳐내고
방 청소도 도맡아 하고 쓰레기봉지를 들고 다른 학생들 보다
먼저 등교 하고 무엇이던 내 허락을 받은 후 행동하고 의논하고
누가 보든 보지않든 항상 솔선수범한다.
비오는 날은 친구들을 일일히 바레다주고
요 며칠전에는 같은 방 친구가 감기몸살이 걸려 끙끙 앓는데
밤을 꼴딱 세우면서 얼음찜질을 하고 물수건을 이마에 올려주며
간호 하다가 씩씩하게 등교하는 학생이다.
담임에게 물어보니 학교생활도 당연히 모범이고
솔선하는 학생이란다.
나는 항상 그 애만 보면 기분이 좋아 격려하고 칭찬을 했는데
그 애로 인하여 다른 기숙사생들도 귀엽고 착하게 보이니
한 사람의 선행이 세상을 밝게함을 느꼈다.
그 학생이 얼마전 뻬뻬로데이날
사감실에 조심스럽게 노크 하더니
굵은 뻬뻬로 하나가 예쁘게 포장된 봉지 하나를
내 손에 쥐어주고 부끄러워하며 도망치듯 나간다.
나는 그 선물을 지금도 냉장고에 고이 보관하고 있다.
그 애의 아름다운 마음의 향내를 오랫동안 느끼고파서......
그것은 내가 받은 선물 중에 가장 값진 선물이고
세상에서 가장 귀한 선물이기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