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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7-30 17:33
한자의 시조 창힐(倉頡) 관련 사진과 글
 글쓴이 : 海印
조회 : 348  


한자의 시조 창힐 倉頡은 치우천황의 스승 자부선생의 제자다.

중국에는 창힐문자가 있었다. 중국문자의 시초로 알려지고 있다. 역대 신선통감에는 창힐이 진창 사람으로 태호복희의 신하가 되어 거북 등과 새 발자국을 보고 여섯가지의 글자체를 만든 인물로 나와 있다.

그러나 환단고기에서는 그보다 약 700년 후에 치우천황의 제후로서 배달국 신지문자를 중원에 전파시킨 인물이라 밝히고 있다.

당시 치우천황의 스승이 자부선생이었는데 헌원, 창힐, 대요가 모두 자부선생 밑에서 신교의 문화와 철학을 전수받았다. 헌원은 삼황내문경을 전수받았고 대요는 간지의 술법을 전수받았고 칭힐은 부도지문을 전수받았다. 그 후에 헌원은 탁록에서 군사를 일으켰다가 치우의 공격을 받고 대요와 창힐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대요와 창힐은 치우를 추종하였다. 대요와 창힐은 배달의 자부선생으로부터 문물을 전수받았기 때문에 스승의 나라를 배반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10년간 73회의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가 헌원은 치우에게 사로잡히고 무릎을 꿇게 된다.

창힐의 고향인 섬서성 백수현에 있는 [창성조적서비創聖鳥跡書碑]에는 배달국 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그와 동일한 문자가 평안북도 용천군 신암리 고분에서 출토된 토기에 새겨져 있음이 확인되었다. 현재 창힐의 무덤은 하남성 남락현에 보존되어있다.

『회남자(淮南子)』「본경훈(本經訓)」에는 이를 “창힐이 문자를 만들자 하늘이 곡식을 비처럼 뿌리고 귀신이 밤새도록 울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멀리 훈족으로부터 시발하여 만주와 연해주 일대를 주름잡던 동이족으로 이어지고 한족인 중국인들이 흉노족으로 비하해서 부른 종족이 바로 대한민국의 주축인 몽골리안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조상의 뿌리에 대한 긍지를 느낄 수는 있어도 자괴감에 빠질 필요가 없는 신선한(개코같은 또라이 문헌학자들에 의해서 검증?된 내용은 아니지만) 내용 같아서(海印導師가 기다면 긴 것이다.ㅎㅎㅎ)알아서 나쁠 것이 없다 싶어서 퍼 와서 기록한다.

海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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